항목 ID | GC094005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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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 龜旨峯 |
이칭/별칭 | 구수봉,구봉,구지봉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민간 신앙 유적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구산동 산81-2 |
시대 | 고대/초기 국가 시대/삼한 |
집필자 | 김양훈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1년 3월 7일 - 김해 구지봉 사적 제429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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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김해 구지봉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
현 소재지 | 김해 구지봉 - 경상남도 김해시 구산동 산81-2 |
성격 | 사적지 |
관련 인물 | 수로왕 |
면적 | 138,295㎡ |
소유자 | 김해시 |
관리자 | 김해시 문화유산관리팀 |
문화재 지정 번호 | 사적 |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구산동에 있는, 금관가야를 건국한 수로왕의 신화가 전해 오는 사적지.
[개설]
김해 구지봉(金海 龜旨峯)은 다른 이름으로 ‘구수봉(龜首峯)’ 또는 ‘구봉(龜峯)’이라고도 부른다. 『삼국유사(三國遺事)』「가락국기」에 기록된 수로왕(首露王)[?~199]의 가락국 건국 신화의 배경 장소로 전해지며, 옛 김해 지역을 조망하던 낮은 구릉이었다. 수로왕의 도래와 금관가야의 건국을 노래한 「구지가(龜旨歌)」가 탄생하여 국문학사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위치]
김해 구지봉은 김해시 구산동 산81-2번지에 있다. 구지봉의 동쪽에는 김해 수로왕비릉(金海 首露王妃陵)이, 서쪽에는 국립김해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형태]
동북-서남 방향으로 펼쳐진 형태를 갖춘 낮은 독뫼로, 면적은 13만 8295㎡이다. 이곳을 ‘구지봉’이라고 부른 것은 산의 형태 때문이다. 『삼국유사』「가락국기」에는 십붕(十鵬)이 엎드린 모양과 같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었지만, 지역 사회에서는 거북이가 엎드려 있는 모습과 닮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 것이라고 전한다. 현재 독뫼는 2개의 구릉으로 갈라져 있는데, 거북 목 부분으로 알려진 가운데 부분은 일제 강점기에 남동-북서 방향으로 도로[가락로]를 개설한 자리이다. 근래에 지역 사회에서 김해의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끊어진 구릉을 인도로 연결하여 하나의 독뫼처럼 보이게 하였다. 구지봉 정상부에 ‘대가락국태조왕탄강지지(大駕洛國太祖王誕降之地)’가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으며, 정상부 남동쪽 끝자락에 고인돌 1기가 있다. 고인돌은 바둑판식[남방식] 구조로, 덮개돌[상석]에 석봉(石峯) 한호(韓濩)가 쓴 것으로 알려진 ‘구지봉석(龜旨峯石)’이 새겨져 있다.
[의례]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의하면, 42년[건무(建武) 18] 임인 3월 계욕일(禊浴日)에 구지봉에서 9명의 간(干)과 백성 200명~300명이 김수로를 맞이하기 위해 산봉우리 꼭대기의 흙을 파면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만일 내밀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고 노래하고, 뛰면서 춤을 추었다. 이 노래가 「구지가」이다. 본래 가락국 성립 이전에 구간사회에서 불렀던 주술의 노래였는데, 수로왕의 등장과 가락국 성립에 신성성을 부여하는 노래로 각색되면서 가락국 건국 신화의 한 대목이 되었다.
[현황]
김해 구지봉은 2001년 3월 7일 사적 제429호로 지정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는 삭제되었다. 소유자는 김해시 등이며, 관리자는 김해시이다. 김해 수로왕비릉 건너편에 있는 김해 구지봉 입구에는 근래에 세운 ‘구지봉’ 표지석과 ‘영대왕가비(迎大王歌碑)’가 있다. 한편, 김해 구지봉 서남쪽 구릉에서는 2023년 7월 실시한 유적 발굴[시굴] 조사에서 기둥 구멍[주혈]과 구덩이[수혈], 도랑과 함께 민무늬 토기가 발견되어 청동기 시대 유적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의의와 평가]
김해 구지봉은 금관가야의 건국을 상징하는 역사적 현장으로서, 김해 지역 가야사 복원에 많은 기여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