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5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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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龜山洞 靑銅器 時代 聚落 |
이칭/별칭 | 구산동 청동기 취락,구산동 청동기 시대 취락 유적,김해 구산동 청동기 시대 취락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구산동 1079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임학종 |
현 소재지 | 구산동 청동기 시대 취락 - 경상남도 김해시 구산동 10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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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주거 유적 |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구산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후기의 취락 유적.
[위치]
구산동 청동기 시대 취락(龜山洞 靑銅器 時代 聚落)은 경운산(慶雲山) 동쪽 비탈면과 해반천에 닿은 낮은 평탄지에 형성되어 있다. 해반천 가의 평탄면은 해발 10m 높이이며, 김해 구산동 고인돌이 위치하는 곳이다. 경운산 비탈면은 해발 15m~45m의 완만한 구릉으로, 취락의 대부분이 이곳에 자리한다.
[형태]
집락은 집자리와 구덩이[수혈], 도랑[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집자리를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집자리는 90여 동 이상이 확인되었으며, 비탈면에 ‘L’ 자형으로 파서 만들었다. 평면의 형태는 타원형[송국리형]과 긴네모꼴[장방형], 네모꼴[방형]의 세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혼합 형태를 보이는 예도 몇 있다. 타원형 외에는 대부분 청동기 시대 후기의 소위 초기 철기 시대에 해당하는 집자리이다.
타원형 집자리는 고고학 용어로는 송국리형 집자리라고 하는데, 청동기 시대 중기에 해당하며 5기를 확인하였다. 고인돌 바로 옆에 1기, 비탈면의 비교적 낮은 곳에 4기가 있다. 밀집되지 않고 띄엄띄엄 자리하며, 집자리 가운데에 작업 구덩이가 있는 경우가 많다. 긴네모꼴 집자리는 등고선과 평행하게 만들어져 있다. 53기 중 38기가 비탈면의 남쪽 구역에 밀집되어 있다. 네모꼴 집자리는 비탈면의 북쪽 구역에 집중되어 있다. 두 형태의 집자리가 서로 다른 구역에 모여 있는 것은 시기적인 차이인데, 긴네모꼴이 이른 시기이다.
집자리들에서는 아궁이나 부뚜막으로 추정되는 시설이 나와 주목된다. 아궁이는 집자리 바닥에서 얕게 파 들어가 바로 솥을 거는 부뚜막으로도 볼 수 있는데, 집자리 벽에 붙어 있거나 벽 바깥으로 돌출하여 나가고 있다. 벽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가지고 벽에 직각의 위치에 있는 같은 시기의 사천 늑도 유적(泗川 勒島 遺蹟)[사적]이나 방지리 유적의 예와 다른 부분이다. 온돌의 고래[구들장 밑 불길과 연기가 나가는 길]도 확인되었다. 벽 혹은 집자리 바닥에 온돌 고래를 만들어 아궁이의 불을 난방용으로 사용한 예인데, 구들이 확인되기도 한다. 긴네모꼴과 네모꼴의 집자리에서 모두 보이는데, 긴네모꼴 집자리의 고래 형태가 더 정형적이다. 긴네모꼴 집자리 중에는 출입구 시설이 남아 있는 것도 있다. 아울러 몇 동의 집자리들은 서로 빈터나 구덩이를 공유하는 양상이 보여 세대 공동체의 한 형태로 해석하기도 한다.
[의의와 평가]
구산동 청동기 시대 취락 집자리들은 동일 지역에 대한 완전한 발굴이라는 면에서 고고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취락에서는 일본 야요이[彌生] 토기가 많이 출토되고 있는데, 전체 토기의 70%~80% 정도이다. 이는 구산동 청동기 시대 취락에 북구주(北九州) 지역의 야요이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는 의미이며, 양 지역이 긴밀한 교류 관계에 있었음을 알려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