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노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605
한자 光州 盧氏
영어공식명칭 Gwangju Nossi|Gwangju No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신은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광주 노씨 본관 - 광주광역시
세거|집성지 광주 노씨 세거지 -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금곡리 지도보기
성씨 시조 노해

[정의]

노해를 시조로 하는 경상남도 김해시의 세거 성씨.

[개설]

1904년(고종 41)까지만 해도 김해시의 생림면한림면 일대에 노씨가 많이 살았다고 하며, 그중 생림면 금곡리에는 광주 노씨(光州 盧氏) 집성촌이 있었다. 생림면한림면 일대에 거주하던 노씨들 가운데에 구한말 독립운동을 하면서 김해 지역 사상계를 주도했던 대눌(大訥) 노상익(盧相益)[1849~1941]과 소눌(小訥) 노상직(盧相稷)[1855~1931] 형제가 유명하다. 노상익, 노상직 형제는 모두 금곡동[현 한림면 금곡리]에서 태어났으며, 성재(性齋) 허전(許傳)의 제자로 영남 지역 사림들 사이에서 이름이 높았다. 두 사람은 조선이 일제에 병탄된 뒤 간도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연원]

광주 노씨의 시조 노해(盧垓)는 당나라 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려 전기 지금의 광주광역시 지역에 세거하며 광주를 본관으로 하였다. 고려 후기에 다른 성씨들과 마찬가지로 광주 노씨들도 전국으로 흩어지게 되었고, 조선 후기 즈음 김해 지역에 이거한 것으로 추정된다.

[입향 경위]

광주 노씨가 김해시 생림면 금곡리에 언제 입향하였는지는 정확하게 확인하기 어렵다. 1600년대에 마을 앞에 있는 회화나무, 상수리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굴참나무 군락이 형성되었는데, 이 즈음 광주 노씨가 이거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한편, 18세기 전반에 광주 노씨가 김해 지역에서 세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김해의 가장 오래된 지리서인 『분성여지승람신증초(盆城輿地勝覽新增抄)』 성씨조에 광주 노씨가 확인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늦어도 『분성여지승람신증초』가 작성되기 전인 1700년대 즈음에는 광주 노씨들이 김해 지역에서 세거한 것으로 보인다.

1904년에 간행된 『경상남도 김해군 가호안(慶尙南道 金海郡 家戶案)』을 보면, 주로 지금의 한림면생림면 일대에 노씨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당시 생림일작면 상라전동(上羅田洞)에는 전체 20가구 가운데 노씨가 7가구, 금곡동에는 전체 24가구 가운데 20가구가 노씨였으며, 생림이작면 마사동(馬沙洞)에는 전체 38가구 가운데 노씨는 8가구, 신포동(薪浦洞)에는 전체 44가구 가운데 노씨는 12가구였다. 지금의 한림면 일대에도 노씨들이 더러 거주하였는데 하북면 신천동(新泉洞)에는 전체 25가구 가운데 5가구가 노씨였다. 중북면 본산동[현 진영읍 본산리]에는 44가구가 거주하였으며, 이 가운데 노씨는 5가구였다.

[현황]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화마을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다. 광주 노씨 여러 가구가 지금도 한림면 금곡리 일대에서 살고 있다.

[관련 유적]

김해시 한림면 금곡리 어귀에 노상직 묘비가 있다. 노상직은 1931년 3월 24일에 사망하였으며, 묘소가 금곡리 안산에 있었으나 2009년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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