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내동지석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1359
한자 金海 內洞支石墓
영어공식명칭 Dolmen in Naedong
이칭/별칭 김해 내동 고인돌,내동 고인돌,내동 지석묘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내동 473-2|469
시대 선사/청동기,선사/철기
집필자 양화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76년 - 김해 내동지석묘 1호 부산대학교 박물관에서 긴급 발굴 조사 실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5년 - 김해 내동지석묘 2호 동의대학교 박물관에서 긴급 발굴 조사 실시
문화재 지정 일시 1990년 12월 20일연표보기 - 김해 내동지석묘 경상남도 기념물 제97호 지정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6년 - 김해 내동지석묘 3호 동의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실시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김해 내동지석묘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소재지 김해 내동지석묘 - 경상남도 김해시 내동 473-2지도보기|469지도보기
출토 유물 소장처 국립김해박물관 - 경상남도 김해시 가야의길 190[구산동 232]지도보기
성격 고인돌
크기(높이,지름) 310㎝[3호 고인돌 덮개돌 길이]|240㎝[3호 고인돌 덮개돌 너비]|70㎝[3호 고인돌 덮개돌 두께]
관리자 김해시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기념물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내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말기 혹은 초기 철기 시대의 고인돌.

[개설]

고인돌[支石墓]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거석문화로, 김해시 전역에 많은 수가 분포하고 있다. 김해시 내동에서도 고인돌 3기가 확인되는데, 형태는 지하에 돌을 쌓아 무덤방을 만들고 상부를 납작하게 하여 큰 돌로 된 뚜껑을 덮었다.

[위치]

김해 내동지석묘(金海 內洞支石墓)김해시 내동 473-2번지내동 469번지에 있다. 경운산(慶雲山)[377.2m]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비탈 말단부와 이어지는 평탄면의 주택가에 입지하고 있다. 유적의 남서쪽과 남쪽으로 함박산[165m]과 임호산(林虎山)[179.6m]을 마주 보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해반천(海畔川)이 흐르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김해시 내동에는 원래 상당수의 고인돌이 있었으나, 후대에 들어 마을과 경작지를 조성하면서 3기만 남게 되었다. 이후 도시 개발로 인하여 1호 고인돌과 2호 고인돌이 파손되면서, 1976년 부산대학교 박물관에서 1호 고인돌에 대한 긴급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이후 1985년 동의대학교 박물관에서 2호 고인돌에 대한 긴급 발굴 조사를 진행하였다. 3호 고인돌 또한 1996년에 동의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형태]

총 3기가 확인되었다. 1호 고인돌은 당시 덮개돌[상석]이 없어 정확한 구조와 형식을 알 수 없으나, 지하식 돌덧널형[석곽형] 무덤방 상부에 깬돌[할석]로 된 돌무지[적석]를 덮고 받침돌[지석]로 덮개돌을 받친 형태이다. 유물은 돌무지 내에서 출토되었다. 2호 고인돌은 덮개돌과 받침돌을 갖춘 전형적인 남방식[기반식] 고인돌이지만, 조사 당시에 이미 파괴된 상태라 정확한 크기나 형태를 알 수 없다. 매장 주체부는 덮개돌을 가진 지하식 돌덧널 형태로, 규모는 230㎝×70㎝×96㎝이며 내부에서 유물이 출토되었다. 3호 고인돌은 개석식으로, 덮개돌의 규모는 310㎝×240㎝×70㎝이다. 무덤방은 지하식 돌덧널형이며, 규모는 225㎝×95㎝×90㎝이다. 상부에 뚜껑돌[개석]을 덮고 빈틈을 작은 깬돌로 채웠다. 무덤방 바닥은 깬돌을 전면에 깔았고, 유물은 뚜껑돌 위와 무덤방 안에서 출토되었다.

[출토 유물]

1호 고인돌 주변에서 한국식 동검[세형동검] 1점과 붉은 간 토기[적색 마연 토기], 검은 간 토기[흑도] 1점이 수습되었고, 2호 고인돌 무덤방에서는 붉은 간 토기 1점과 돌 화살촉[마제 석촉] 1점, 야요이계 토기 조각이 출토되었다. 3호 고인돌의 뚜껑돌 위에서는 조개껍질과 붉은 간 토기 1점을, 무덤방 안에서는 민무늬 토기[무문 토기] 조각과 사람 뼈 일부를 확인하였다.

[현황]

김해 내동지석묘는 1990년 12월 20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97호로 지정되었으며, 관리자는 김해시이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는 삭제되었다. 발굴 조사 후 3호 고인돌의 덮개돌은 국립김해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이전하여 전시하였다가, 2016년 10월 31일에 원래 자리로 옮겨 놓았다. 현재 고인돌 사방으로 울타리 형태의 철제 보호 시설이 설치되어 있고, 정면에는 국가유산 알림판이 세워져 있다. 출토 유물은 국립김해박물관에서 소장하여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김해 내동지석묘는 기원전 4세기~3세기경 청동기 시대 말기 혹은 초기 철기 시대에 축조되었는데, 무덤방 벽면을 가야의 돌덧널무덤처럼 매우 정연하게 쌓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출토 유물을 통해 당시 일본과의 교류 흔적이 확인된다. 김해 내동지석묘는 추후 발굴 조사된 김해 지역 고인돌과 취락 유적과의 비교 검토를 통해, 김해 지역의 청동기 시대 사회와 문화, 생활상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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