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561
한자 金海 長有洞 遺蹟
영어공식명칭 Relics of Jangyu-dong, Gimhae
이칭/별칭 김해 율하 2지구 택지 개발 사업 부지 내 유적,장유동 유적,김해 장유 유적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장유동 360
시대 선사/선사,고대/초기 국가 시대,고대/삼국 시대,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양화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6년 6월 29일~2006년 9월 17일 - 김해 장유동 유적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실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4년 3월 27일~2016년 5월 26일 - 김해 장유동 유적 경상문화재연구원에서 시굴 조사 실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5년 1월 5일~2016년 5월 26일 - 김해 장유동 유적 경상문화재연구원에서 표본 조사 실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5년 5월 18일~2016년 5월 26일 - 김해 장유동 유적 경상문화재연구원에서 구제 발굴 조사 실시
현 소재지 김해 장유동 유적 - 경상남도 김해시 장유동 360 지도보기
성격 복합 유적
크기(높이,길이,둘레) 23m[신석기 시대 집석 유구 길이]|5.3m[신석기 시대 집석 유구 너비]|약 25㎝[신석기 시대 집석 유구 최대 높이]|540㎝~650㎝[청동기 시대 집자리 길이]|288㎝~453㎝[청동기 시대 집자리 너비]|4㎝~25㎝[청동기 시대 집자리 깊이]|230㎝~350㎝[청동기 시대 무덤 길이]|83㎝~190㎝[청동기 시대 무덤 너비]|36㎝~58㎝[청동기 시대 무덤 깊이]|440㎝[삼국 시대 집자리 길이]|330㎝[삼국 시대 집자리 너비]|25㎝[삼국 시대 집자리 깊이]|255㎝[통일신라 시대 돌방무덤 길이]|157㎝[통일신라 시대 돌방무덤 너비]|24㎝~151㎝[조선 시대 제철 유구 길이]|22㎝~69㎝[조선 시대 제철 유구 너비]|7㎝~15㎝[조선 시대 제철 유구 깊이]|550㎝~1,801㎝[조선 시대 지면식 건물터 길이]|344㎝~735㎝[조선 시대 지면식 건물터 너비]
면적 88,809㎡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장유동에 있는 신석기 시대~조선 시대 복합 유적.

[개설]

김해 장유동 유적(金海 長有洞 遺蹟)은 신석기 시대~조선 시대의 매장 및 생활, 생산을 포함하는 복합 유적이다. 2006년 6월 29일~동년 9월 17일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를 실시한 후, 2014년 3월 27일~2016년 5월 26일 경상문화재연구원에서 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이와 함께 2015년 1월 5일~2016년 5월 26일에 경상문화재연구원에서 표본 조사를 하였다. 더불어 2015년 5월 18일~2016년 5월 26일 경상문화재연구원에서 구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김해 율하 2지구 택지 개발 사업 부지에 해당한다. 발굴 조사 결과 신석기 시대의 도토리 집적부, 습지 디딤돌, 목주군, 집석(集石) 유구와 청동기 시대~조선 시대의 집자리[주거지], 인공 구덩이[수혈], 건물터 등의 생활 및 주거 유구, 그리고 무덤, 도로 유구, 제철 유구, 기와 가마 등이 확인되었다.

[위치]

김해 장유동 유적김해시 장유동 360번지에 있다. 김해시 남쪽 연변부에 위치하는데, 고 김해만(古 金海灣)의 해안선에 일부가 포함된다. 지형적으로 금배산[241.2m], 굴암산(屈岩山)[663.1m]과 이어지는 동서 산계와 화산[789.4m]에서 분기된 반룡산[237.5m] 등의 산지가 에워싸고 있다. 북쪽은 개방된 지형으로 낙동강(洛東江) 하구에 형성된 김해평야와 연결되며, 서쪽으로는 율하천이 남북으로 관류하여 조만강(潮滿江)에 흘러든다. 유적의 동쪽으로는 율하리 유적(栗下里 遺蹟)과 관동리 유적이 연접해 있다.

[형태]

면적은 8만 8809㎡이다. 신석기 시대의 유구 4기와 청동기 시대의 유구 13기, 삼국 시대의 유구 25기, 그리고 통일신라 시대 유구 2기와 고려 시대 및 조선 시대 유구 235기를 확인하였다. 신석기 시대 유구는 고 김해만의 해안선과 접한 뻘층에서 확인하였는데, 신석기 시대의 집석 유구와 도토리 집적부, 목주군, 습지 디딤돌을 조사하였다. 집석 유구는 만의 끝자락에 자연석과 깬돌로 길이 23m, 너비 5.3m, 최대 높이 약 25㎝로 쌓은 형태로, 자연적으로 퇴적될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도토리 집적부는 저장공 없이 세 곳 정도에서 집적 현상을 보였는데, 타닌 제거의 방법으로 사용하였다. 도토리와 관련한 해안 유적은 김해 지역에서 최초로 조사하였는데, 노출면이 당시 생활면일 가능성이 높다. 목주군은 내만하는 해안선을 따라 13기를 확인하였는데, 신석기 시대 중기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하였다. 습지 디딤돌은 도토리 집적부에서 북동쪽으로 9개의 돌이 1열로 가지런하게 놓여 있는데, 해안가에서 도토리 집적부로 이어지는 방향이다. 유물은 덧무늬[융기문] 토기 조각과 빗살무늬[태침선문] 토기 조각, 돌도끼[석부], 도토리와 목재 등을 확인하였다.

청동기 시대의 집자리는 평면 형태가 원형이고 바닥 중앙에 타원형 인공 구덩이가 있는 송국리형 집자리인데, 규모는 길이가 540㎝~650㎝, 너비가 288㎝~453㎝, 깊이가 4㎝~25㎝이다. 무덤은 석축형 돌널[석관] 1기와 돌덧널[석곽] 1기를 확인하였다. 규모는 길이 230㎝~350㎝, 너비 83㎝~190㎝, 깊이 36㎝~58㎝로, 주검받침대[시상대]와 유물 부장 공간을 갖춘 형태이다. 유물로는 민무늬 토기[무문 토기]와 붉은색 간 토기[적색 마연 토기], 대롱옥[관옥]이 출토되었다. 김해 장유동 유적에서 청동기 시대 집자리와 무덤은 중심 취락인 동 시기 율하리 유적의 주변부 취락일 가능성이 높으며, 청동기 시대에 일부만 활용된 것이다.

삼국 시대의 집자리는 장방형으로, 규모는 길이가 440㎝, 너비가 330㎝, 깊이가 25㎝이다. 내부 시설로 고래로 추정되는 석렬을 확인하였고, 유물은 항아리가 출토되었다. 통일신라 시대의 돌방무덤은 장방형의 평면을 갖추었으며, 규모는 길이가 255㎝, 너비가 157㎝이다. 돌방과 무덤길[묘도], 주검받침대를 갖춘 형태이며, 유물은 아가리[구연부] 조각이 출토되었다.

고려 시대의 기와 가마는 2기를 조사하였다. 1호 가마는 연소실과 아궁이, 요전부, 회구부만 남아 있다. 연소실은 역삼각형이며, 아궁이는 할석을 세워 축조하였고, 요전부 안은 명문 기와를 비롯한 평기와로 채워졌다. 2호 가마는 폐기장을 굴착하면서 축조하여 연도부만 남아 있다. 유물로는 ‘신문초(新文草)’가 새겨진 명문 기와가 출토되었는데, 이는 ‘신문’에서 공급된 기와 또는 신문에 공급하는 기와로 해석 가능하며, 공급처와 수요처를 기록한 것이다. 가마의 조영 시기는 2세기이다.

또 고려 후기~조선 전기에 조성된 도로 유구 4기를 확인하였는데, 도로 유구 양쪽에서 지면식 건물터와 수혈 주거지, 인공 구덩이 등 주거 및 생활 유구가 많이 보였다. 유물은 청자와 분청사기, 백자, 기와가 출토되었다. 유물로 보아 도로 개설 시기는 13세기 후반이며, 주 사용 시기는 조선 초기로 분청사기에서 백자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폐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도로 유구는 김해 관내의 육상 교통망과 연한 지역의 교류 활동을 밝힐 수 있는 주요한 역사 유적이며, 중세 시기 김해 지역사 복원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조선 시대의 제철 유구는 평면 형태가 장타원형·부정형이며, 규모는 길이가 24㎝~151㎝, 너비가 22㎝~69㎝, 깊이가 7㎝~15㎝이다. 내부에서 송풍관 조각과 벽체 조각, 슬래그 조각을 확인하였으며, 용해로로 추정된다. 건물터는 초석 건물터와 지면식 건물터, 고상 건물터를 확인하였다. 초석 건물터는 기단과 적심, 박석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는 형태인데, 기단 내부를 평탄하게 만들기 위해 흙 돋움을 후 적심을 만들었다. 지면식 건물터는 평면 형태가 ‘ㄱ’ 자형으로, 외구부와 아궁이를 갖춘 형태인데, 외구부 주변에는 기둥 구멍이 배치되었다. 규모는 길이가 550㎝~1,801㎝, 너비가 344㎝~735㎝이다. 고상 건물터는 1칸×1칸의 4주식과 1칸×2칸의 6주식을 확인하였는데, 대부분이 1칸×1칸의 4주식으로 소형에 속한다. 건물터 내에서 백자와 기와, 옹기 등이 출토되었다. 이외에도 규모나 형태가 다양한 인공 구덩이와 바닥에서 소결흔이 확인되는 소성(燒成) 유구, 도랑[구], 불규칙하게 배치된 주혈군(柱穴群)을 확인하였다.

[현황]

김해 장유동 유적은 원형 보존 구역[3만 9656㎡]을 제외한 나머지 구역에 대한 발굴 조사가 완료된 상태이다. 택지 개발 사업이 행해져 현재 아파트 단지 등 근린 생활 시설이 조성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고 김해만의 해안선에서 김해 장유동 유적이 확인됨에 따라 신석기 시대 유적의 분포 범위가 더 확장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해안선에 대한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또한 김해 장유동 유적에서 구석기 시대 유물 3점이 채집되어 김해 지역에 구석기 시대 유적이 분포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김해 장유동 유적과 기존에 조사한 율하리 유적, 관동리 유적과의 비교 검토를 통해 신석기 시대~조선 시대 김해 율하 일원에 대한 종합적인 고고학 연구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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