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576 |
---|---|
한자 | 金海 靈龜庵 三層石塔 |
이칭/별칭 | 영구암 삼층석탑,김해 삼방동 삼층석탑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탑과 부도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신어산길 170[삼방동 882-1] |
시대 |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연진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9년 8월 6일 - 김해 영구암 삼층석탑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73호 지정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김해 영구암 삼층석탑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김해 영구암 삼층석탑 경상남도 문화재자료에서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 지정 |
현 소재지 | 영구암 - 경상남도 김해시 신어산길 170[삼방동 882-1] |
성격 | 석탑 |
재질 | 돌 |
크기(높이) | 160㎝ |
소유자 | 영구암 |
관리자 | 영구암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삼방동 영구암에 있는 고려 시대 석탑.
[개설]
김해 영구암 삼층석탑(金海 靈龜庵 三層石塔)은 영구암(靈龜庵) 대웅전 앞에 자리한다. 영구암은 멀리서 본 정상의 능선이 거북이와 닮았다고 하여 ‘영구암’으로 이름 지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가락국 시기 허황옥(許黃玉)[?~188]의 오빠 장유화상(長遊和尙)이 서림사[현 은하사(銀河寺)]와 동림사를 창건할 때 영구암도 창건하였다고 하나 입증할 문헌 자료는 없다. 다만 1469년(예종 1) 편찬된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와 1530년(중종 25)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1786년의 『김해부읍지(金海府邑志)』에 ‘구암사’로 기록되어 있어 현재 영구암으로 추정하고 있다. 영구암 삼성각에 봉안된 칠성탱(七星幀)이 근대 불화승인 완호 낙현에 의해 1910년에 조성되었으며, 묵방선사와 영운선사, 대휘선사 등 가야 불교의 부흥을 발원하였던 선사들이 영구암에서 주석하였다.
[위치]
김해 영구암 삼층석탑은 김해시 삼방동 882-1번지에 있는 영구암 대웅전 앞에 있다.
[형태]
높이는 160㎝이며, 기단부와 탑신부, 상륜부가 갖추어진 3층 석탑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지대석(址臺石)과 탑신석, 옥개석(屋蓋石)의 크기가 서로 맞지 않아, 원래는 2기 이상의 탑신이 주변에 흩어져 있던 것을 재조립한 것이 아닌가 추정하기도 한다. 기단부는 지대석과 면석, 갑석으로 구성되어 있고, 화강암으로 보이나 일부는 용도 불명의 석재를 사용하였다. 기단부 높이는 약 70㎝이고, 옥개석은 80㎝, 상륜부는 15㎝이다. 상륜부는 노반(露盤) 및 복발(覆鉢)로 구성되어 있는데, 온전하게 잘 남아 있다.
[현황]
김해 영구암 삼층석탑은 2009년 8월 6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73호로 지정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는 삭제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에서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되었다.
[의의와 평가]
김해 영구암 삼층석탑은 고려 시대에 조성한 석탑으로, 여러 기의 석탑 부재를 조합한 것으로 보인다. 영구암은 은하사와 더불어 가락 불교와 관련된 전설이 있지만 구체적인 증거는 찾기가 어려우며, 여러 문헌 기록을 통해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번창하였던 사찰이었음이 확인된다. 비록 석탑 부재의 출처와 재조립 가능성 등의 문제점은 있지만 상륜부의 노반 및 복발이 온전하게 잘 남아 있다는 점, 그리고 김해 지역에서 고려 시대의 석탑 양식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특히 김해 안곡리 삼층석탑(金海 安谷里 三層石塔)과 양식적으로 비교할 수 있으며, 고려 시대 김해 지역의 불교사와 탑의 양식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