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5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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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客舍後苑址 |
영어공식명칭 | Gimhae Gaesa Backyard |
이칭/별칭 | 김해객사후원 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구지로180번길 23-1[동상동 874-5] |
시대 |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권순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498년 - 김해객사후원지 내 함허정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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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547년 - 김해객사후원지 내 함허정 확장 공사 실시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615년 - 김해객사후원지 내 함허정 중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687년 - 김해객사후원지 내 함허정 중수[1687]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801년 - 김해객사후원지 내 함허정 중건[1801]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801년 - 김해객사후원지 내 양사재 건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821년 - 김해객사후원지 내 양사재 향교 아래로 이건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845년 - 김해객사후원지 내 함허정 중건[1845]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859년 - 김해객사후원지 내 함허정 보수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870년 - 김해객사후원지 내 함허정 중수[1870]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70년 - 김해객사후원지 내 함허정 화재로 소실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7년 - 김해객사후원지 한국문물연구원에서 시굴 조사 실시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8년 2월 5일 - 김해객사후원지 경상남도 기념물 제267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김해객사후원지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
소재지 | 김해객사후원지 - 경상남도 김해시 구지로180번길 23-1[동상동 874-5] |
성격 | 후원 터 |
지정 면적 | 2,099㎡ |
소유자 | 범어사 외 |
관리자 | 김해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기념물 |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동상동에 있는 고려 시대~조선 시대 객사의 후원 터.
[개설]
김해객사후원(金海客舍後苑)은 고려 시대~조선 시대 객사 뒤편에 관에서 조성한 관영 원림(園林)이다. 조선은 한양 도성(漢陽 都城)을 성리학적 예절 질서가 반영된 도시를 만들면서 지방의 도시들도 이와 유사하게 만들고자 하였다. 따라서 지방에도 임금과 궁궐을 상징하는 객사(客舍)를 조성하여 국왕의 권위를 나타냈다. 한편, 객사는 사신과 관리들의 숙소로 사용하여 연회와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누각과 원림을 갖추거나, 경관이 좋은 곳에 입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김해 지역은 평지에 입지한 관계로 높은 곳에서 주변을 바라보는 외형적인 형태보다는, 구산천의 용수를 끌어와 수변 공간과 누정을 만들어 내향적인 공간을 조성한 특징이 있다.
김해객사후원에는 중심 누각인 연자루(燕子樓)[13세기 건립]를 중심으로 연지(蓮池)와 함허정(涵虛亭), 연당(蓮塘), 분성대(盆城臺) 등이 있었다.
함허정은 김해읍성(金海邑城) 안 관아의 부속 누정으로서 1498년(연산군 4) 김해부사 최윤신(崔潤身)이 건립하였고, 같은 해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이 기문을 지었다. 1547년(명종 2)에 부사 김수문(金秀文)이 크게 지어 남명(南冥) 조식(曺植)이 기문을 남기고 시를 짓기도 하였다. 1615년(광해군 7) 부사 조계명(曺繼明)이 중창하였고, 1687년(숙종 13)에는 부사 이행익(李行益)이 중수하였다. 또한 1777년(정조 1) 함허정이 퇴락하여 무너지자, 1801년(순조 1) 부사 심능필(沈能弼)이 옛터에 중건하고 함허정 남쪽에 양사재를 건립하였다. 1821년(순조 21)에는 양사재를 향교 아래로 이건하여 함허정만 남았으며, 1845년(헌종 11) 부사 김한익(金漢瀷)이 중건하였다. 1859년(철종 10) 부사 정재용(鄭在容)이 보수하였으며, 1870년(고종 7)에도 부사 정현석(鄭顯奭)이 중수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제작된 지적 원도에 현재의 김해시 동상동 874번지가 국유지이며 대지로 되어 있어 함허정의 위치를 추정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 함허정에 은하사(銀河寺) 포교당이 설치되어 용도가 변경된 것으로 보인다. 1954년 2월 촬영한 항공 사진에서 네모난 연당 안 사각형의 섬에 한옥 팔작지붕 건물이 보이는데, 함허정인 것으로 판단된다. 함허정의 정면과 서쪽에는 다리가 조성되어 있었다. 1970년 화재로 함허정이 불에 탄 것으로 추정되며, 1975년 철근 콘크리트 건물의 연화사(蓮華寺) 대웅전으로 건립되어 현재 모습이 되었다.
[위치]
김해객사후원지는 김해시 동상동 874-5번지에 있다. 동상동주민자치센터와 분성광장의 동쪽, 동상전통시장의 북쪽에 위치한다. 구산천[구 호계천]의 중류역 왼쪽 기슭에 있으며, 평지에 자리 잡고 있다. 면적은 2,099㎡이다. 남쪽에는 분성관의 부속 누각인 연자루와 객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김해객사후원지는 가야 왕궁터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이곳에 금관가야의 궁궐터임을 알리는 ‘가락국고도궁허(駕洛國古都宮墟)’ 비석이 있어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2007년 한국문물연구원이 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모두 5기의 탐색 용갱을 설치한 결과, 궁궐터는 확인되지 않았고 분성대 기단으로 추정되는 성토층이 확인되었다. 또한 사충단(四忠壇)의 기단 석렬과 보도를 비롯하여 함허정 연못의 호안 석축도 확인하였다.
[현황]
김해객사후원지는 2008년 2월 5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267호로 지정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는 삭제되었다. 소유자는 범어사 등이고, 관리자는 김해시이다. 김해객사후원지는 발굴 조사 후 복토되어 원형을 알 수 없으며, 또한 연화사 사찰로 이용되고 있어 과거의 정취를 느낄 수 없다. 단지 사각형의 연당과 협문이 남아 있어 과거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다. 현재 금관가야의 궁궐터임을 알리는 비석 ‘가락국고도궁허’가 세워져 있으며, 연화사 대웅전 뒤쪽에는 김해시 불암동에 조성되었던 미륵암 마애석불이 이건되어 있다. 연화사 대웅전 안에는 함양 장수사(長水寺)에 있었던 김해 연화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金海 蓮華寺 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이 봉안되어 있고, 대웅전의 정면에는 연자루 장주 초석 1기가 전시되어 있다. 또 대웅전 서쪽에는 7층 사리탑과 7층 사리탑 연혁비가 건립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김해객사후원지는 김해객사인 분성관의 부속 정자와 원림 시설로 확인되었지만, 발굴 조사된 유구는 현재 복토되어 되어 그 형태를 알 수 없다. 또한 현재는 사찰이 운영되어 객사의 후원 경관이 많이 변형되었지만, 연당과 연자루의 장주 초석이 남아 있어 그 형태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함허정은 성재 허전(許傳)이 김해부사로 부임하여 강학을 한 정자로 역사성이 높은 곳이다. 또한 탁영 김일손과 남명 조식의 기문이 있으며, 김해팔경 중 하나로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지방 관아 관영 누각과 원림 시설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현대에 김해객사후원지는 도시 및 건축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