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747
한자 安彦浩
영어공식명칭 AN Eonho
이칭/별칭 익천(益天),예강(禮岡)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엄경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53년 6월 13일연표보기 - 안언호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34년연표보기 - 안언호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9년 - 예강재 건립
출생지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시례리 지도보기
묘소|단소 안언호 묘소 -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시례리 노현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예강재 -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시례리 상촌마을지도보기
성격 학자
성별
본관 광주(廣州)

[정의]

개항기~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출신의 유학자.

[가계]

안언호(安彦浩)[1853~1934]는 1853년 6월 13일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시례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광주(廣州)이다. 자는 익천(益天)이고, 호는 예강(禮岡)이다. 임진왜란 직후 김해 시례방(詩禮坊)으로 이거한 안경지(安敬祉)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안석원(安碩遠)이다. 어머니는 재령 이씨 이유민(李有敏)의 딸이다. 첫째 부인은 전주 최씨 최징(崔澄)의 딸이고, 둘째 부인은 벽진 이씨 이석준(李錫峻)의 딸이다. 전주 최씨는 1남 1녀, 벽진 이씨는 1남을 낳았다.

[활동 사항]

안언호는 6세부터 『효경』을 읽었다고 하며, 집안 어른인 안영원(安寧遠)으로부터 경서와 사서를 배웠다. 13세 때부터는 노상팔(盧相八)의 용봉재(龍鳳齋)에 오가면서 노상익·노상직 형제 등과 교유하였다. 또, 아버지가 선영 아래 지은 추유정(追裕亭)에서 과거 공부를 하였다. 27세 때 관찰사 이필근(李弼根)이 지방의 유생을 대상으로 시행한 과시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다. 29세부터 40세 직전까지 아버지의 뜻으로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하여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관심이 없어 40세 이후 과거를 포기하였다.

한성으로 허전(許傳)[1797~1886]을 찾아가서 문도가 되었고, 1898년에 아버지가 사망하자 장례 절차를 모두 허전의 『사의』에 따라 거행하였다. 이후 후학 교육에 힘을 다하였다. 허전이 사망하고 난 뒤 근기 남인 학자들이 문헌 간행 사업을 추진하게 되자, 안언호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26년에는 김해향교 옆에 허전의 영정각을 신축하고, 옛 양사재(養士齋) 건물을 보수해서 ‘취정재(就正齋)’란 현판을 걸었다. 이 외에도 조식(曺植)[1501~1572]의 유적인 산해정 복원을 주도하였고, 지역 지식인들과 유가의 학문적 전통과 의리 정신을 다지고자 하였다. 1934년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안언호의 저술로는 1965년 목활자본으로 간행된 6권 4책의 『예강선생문집』이 있다.

[묘소]

안언호의 무덤은 시례리 노현(露峴) 선영에 있다.

[상훈과 추모]

안언호의 후손 안봉환이 1979년 예강재(禮岡齋)를 지었다. 매년 음력 3월 9일에 후손과 유림이 모여 안언호를 기리는 예강재채례를 거행하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