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5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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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 龜山洞 古墳群 |
이칭/별칭 | 구산동 고분군,구산동 고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가락로190번길 1[구산동 120]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가야 |
집필자 | 소배경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20년 10월 - 김해 구산동 고분군 야쓰이 세이이치가 발굴 조사 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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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63년 1월 21일 - 김해 구산동 고분군 사적 제75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김해 구산동 고분군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
소재지 | 김해 구산동 고분군 - 경상남도 김해시 가락로190번길 1[구산동 120] |
성격 | 고분군 |
양식 | 굴식 돌방무덤 |
크기(높이,지름) | 12.8m[봉분 길이]|11.5m[봉분 너비]|4m[봉분 높이] |
소유자 | 김해시 |
관리자 | 김해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사적 |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구산동에 있는 삼국 시대 가야 고분군.
[개설]
김해 구산동 고분군(金海 龜山洞 古墳群)은 일제 강점기에는 삼산리 고분군(三山里 古墳群)으로 불렸다. 김해 구산동 고분군과 김해구산동백운대고분(金海龜山洞白雲臺古墳)은 하나의 사적으로 지정되었다가, 1999년 김해구산동백운대고분이 경상남도 기념물로 분리 지정되었다.
[위치]
김해 구산동 고분군은 김해시 구산동 120번지, 분성산(盆城山)의 주 능선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려오는 서남쪽 가지 능선의 끝자락에 축조되어 있다. 원래는 비탈과 능선을 중심으로 수십 기의 고분들이 분포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2기만 남아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20년 10월 야쓰이 세이이치[谷井濟一]가 ‘삼산리 제1호분’을 발굴 조사하였다. 무덤의 구조는 관을 넣는 돌방[현실]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쌓아 둥글게 무덤의 형태로 만든 굴식 돌방무덤[횡혈식 석실묘]이다.
[형태]
굴식 돌방무덤의 봉분은 길이가 12.8m, 너비가 11.5m, 높이가 4m인 원분(圓墳)이다. 돌방은 봉분의 중앙에 설치되었다. 돌방의 벽은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안쪽으로 기울게 쌓았고, 좁혀진 천장은 2장의 돌로 덮었다. 무덤은 주인이 묻힌 돌방에서 무덤 외부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는 구조이며, 출입문은 남쪽에 두었다. 돌방의 바닥에는 시신을 안치할 수 있는 ‘ㄱ’ 자형의 널받침[시상(屍床)]이 있으며, 널받침의 높이는 40㎝가량으로 높은 편이다.
[현황]
김해 구산동 고분군은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75호로 지정되었다. 소유자 및 관리자는 김해시이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는 삭제되었다. 고분의 정비 및 복원 공사 완료 후 유적 공원이 조성되어 시민들의 역사 문화 공간으로 이용 중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학자가 촬영한 사진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김해 구산동 고분이 있는 김해시 구산동과 대성동 일대는 금관가야의 중심 지역으로, 각종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김해 구산동 고분은 금관가야 멸망 이후 6세기~7세기 김해 지역에 살던 지배층 묘제와 고분 문화의 변천을 잘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