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531
한자 退來里 古墳群
영어공식명칭 Twerae-ri Tombs, Gimhae
이칭/별칭 퇴래리 고분,김해 퇴래리 고분군,김해 퇴래리 고분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퇴래리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이동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4년~1985년 - 퇴래리 고분군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실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0년대 - 퇴래리 고분군 부경문물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실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0년대 - 퇴래리 고분군 우리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실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0년대 - 퇴래리 고분군 강산문화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실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0년대 - 퇴래리 고분군 한반도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실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0년대 - 퇴래리 고분군 삼도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실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0년대 - 퇴래리 고분군 가야역사문화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실시
소재지 퇴래리 고분군 -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퇴래리 지도보기
출토 유물 소장처 국립김해박물관 - 경상남도 김해시 가야의길 190[구산동 232]지도보기
성격 고분군
양식 덧널무덤|돌덧널무덤|항아리 무덤|움무덤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퇴래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개설]

퇴래리 고분군(退來里 古墳群)은 1984년 이후 10여 차례 발굴 조사하였으며, 조사 결과 삼국 시대의 덧널무덤[목곽묘]과 돌덧널무덤[석곽묘], 항아리 무덤[옹관묘] 등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토기류와 철기류가 대부분인데 지배층의 위세품은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위치]

퇴래리 고분군김해시 한림면 퇴래리에 자리한 퇴래미산[151.4m]의 남동쪽 구릉을 중심으로 밀집 분포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84년~1985년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학술적인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학계에 알려졌다. 2000년대에 들어 10여 차례 공장 신축과 주차장 및 체육 시설 조성 등과 관련하여 구제 발굴 조사[부경문물연구원·우리문화재연구원·강산문화연구원·한반도문화재연구원·삼도문화재연구원·가야역사문화연구원 등]가 이루어졌다. 4세기 대~5세기 대 삼국 시대의 고분 유적이 중심이 되는데, 지금까지 덧널무덤 128기와 돌덧널무덤 47기, 항아리 무덤 21기, 움무덤[토광묘] 11기 등을 확인하였다.

[형태]

구릉 주 능선을 기준으로 서쪽 비탈은 덧널무덤이, 동쪽 비탈은 돌덧널무덤들이 밀집 분포하는 등 위치에 따라 무덤 유형이 구분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무덤의 유형이 덧널무덤에서 돌덧널무덤으로 변화하는 것으로 보아, 퇴래리 고분군의 무덤 축조는 시간적으로 구릉 정상부에서 구릉 하부[서쪽]로 내려가며, 구릉 서쪽 비탈면에서 동쪽 비탈면으로 이동한다.

[출토 유물]

토기류와 철기류로 크게 나뉜다. 토기류는 굽다리 잔[고배]과 항아리[호], 토기 받침용 토기[기대]가 확인되었고, 철기류는 큰 칼[대도]과 손칼[도자], 철제 창[철모], 철제 화살촉[철촉] 등의 무기류와 철제 낫[철겸]과 철제 도끼[철부] 등의 농공구류로 구분된다. 철판으로 제작된 갑옷[종장 판갑]과 재갈, 미늘쇠[유자 이기] 등이 출토되었지만 금관가야 최상위층을 상징하는 위세품은 빈약한 편이다.

[현황]

퇴래리 고분군 일대는 다른 고분군에서 일반적으로 확인되는 뚜껑돌[개석]과 벽석 등의 흔적이 뚜렷하지 않다. 2000년대 초엽까지 경작, 공장과 건물의 신축 등 불법적인 난개발로 인하여 원 지형이 많이 훼손되었으며, 지금도 문중이나 개인 묘역이 조성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퇴래리 고분군김해시 한림면 퇴래리 전체 유적[주거, 저장, 생산, 분묘]의 일부이며, 금관가야 외곽의 1개 읍락과 관련한 핵심 취락의 분묘 유적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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