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528
한자 金海 花亭 古墳群
영어공식명칭 Ancient Tombs in Hwajeong, Gimgae
이칭/별칭 김해 화정 고분,화정 고분군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삼계동 산38-8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김의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7년 - 김해 화정 고분군 동의대학교 박물관에서 시굴 조사 실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7년 12월 5일~1998년 7월 27일 - 김해 화정 고분군 복천박물관에서 1차 정밀 조사 실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9년 2월 23일~1999년 7월 2일 - 김해 화정 고분군 복천박물관에서 2차 정밀 조사 실시
소재지 김해 화정 고분군 - 경상남도 김해시 삼계동 산38-8 지도보기
출토 유물 소장처 국립김해박물관 - 경상남도 김해시 가야의길 190[구산동 232]지도보기
성격 고분군
양식 독무덤|덧널무덤|구덩식 돌덧널무덤|앞트기식 굴방 무덤|굴식 굴방 무덤|구덩묘
크기(높이,지름) 210㎝~375㎝[덧널무덤 길이]|90㎝~160㎝[덧널무덤 너비]|135㎝~510㎝[구덩식 돌덧널무덤 길이]|86㎝~307㎝[구덩식 돌덧널무덤 너비]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삼계동에 있는 삼국 시대~통일 신라 시대 고분군.

[개설]

김해 화정 고분군(金海 花亭 古墳群)은 삼국 시대 가야의 구덩식 돌덧널무덤이 중심이지만, 삼국 시대~조선 시대의 다양한 무덤과 함께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및 집자리, 삼국 시대의 숯가마, 조선 시대의 건물터 하부 구조 등의 생산·생활 유구도 확인된 복합 유적이기도 하다. 고분은 삼국 시대 가야의 독무덤을 비롯하여 덧널무덤과 구덩식 돌덧널무덤, 구덩묘, 그리고 통일신라 시대의 돌방무덤 등 금관가야의 고분군 변천과 그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위치]

김해 화정 고분군김해시 삼계동 산38-8번지, 옛 육군공병학교 자리에 있다. 북서-남동 방향으로 형성된 분성산[326.9m] 중간 지점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내린 독립 저구릉 두 곳[북쪽 구릉과 남쪽 구릉]의 해발 30m~35m에 조성되어 있다. 인접한 주변 유적으로는 청동기 시대의 생활 유적인 김해 구산동 유적(金海 龜山洞 遺蹟)과 통일신라 시대의 토기 가마 등이 확인된 삼계동 가마터가 있으며, 삼국 시대의 덧널무덤과 구덩식 돌덧널무덤 등이 확인된 두곡 유적 등도 분포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95년 육군공병학교가 전라남도 장성군으로 이전함에 따라, 북부 지구 택지 개발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해당 부지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고분군의 실체가 드러났다. 1997년 동의대학교 박물관에서 시굴 조사를 실시해 고분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였고, 정밀 조사는 1997년 12월 5일~1998년 7월 27일[1차: 북쪽 구릉]과 1999년 2월 23일~동년 7월 2일[2차: 남쪽 구름] 복천박물관이 실시하였다. 정밀 조사를 통해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및 집자리와 삼국 시대 가야의 돌무더기, 독무덤, 덧널무덤, 구덩식 돌덧널무덤, 그리고 통일 신라 시대의 앞트기식 굴방 무덤과 굴식 굴방 무덤, 조선 시대의 분묘 등 총 260여 기의 유구를 확인하였다. 그중 삼국 시대[가야]~통일신라 시대의 고분은 180여 기였다. 북쪽 구릉에서는 독무덤 3기와 구덩식 돌덧널무덤 56기, 앞트기식 굴방 무덤 15기, 굴식 굴방 무덤 44기, 구덩묘 6기를 확인하였으며, 남쪽 구릉에서는 덧널무덤 12기와 독무덤 7기. 구덩식 돌덧널무덤 25기, 구덩묘 5기, 앞트기식 돌방무덤 2기를 발견하였다.

[형태]

고분군 내 독무덤은 북쪽 구릉의 비탈 하단부에 주로 조성되었으며, 길이가 40㎝ 정도의 소형 옹관부터 100㎝ 정도의 중형의 옹관까지 다양하였다. 독무덤은 주옹 1점과 막음옹 1점으로 연결된 합구식 옹관이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하나의 옹관으로만 구성된 단옹식과 옹관 3개를 연결한 3옹식도 있었다. 덧널무덤은 남쪽 구릉의 중앙부에서 능선을 따라 종 방향으로 일렬 배치되어 조성되었다. 덧널무덤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으로, 전체 규모는 길이가 210㎝~375㎝, 너비가 90㎝~160㎝이며, 덧널 규모는 길이가 140㎝~314㎝, 너비가 40㎝~94㎝ 정도이다. 바닥은 대부분 굴착하였던 단단한 기반암을 그대로 편평하게 하여 사용하였지만, 17호 덧널무덤의 경우는 바닥 전면에 주먹만 한 크기의 돌을 깔아 시신을 안치한 시설[시상석(屍床石)]을 설치한 경우도 있다.

고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구덩식 돌덧널무덤은 모두 반지하식으로, 평면 형태는 세장한 형태의 방형이다. 전체 규모는 길이가 135㎝~510㎝, 너비가 86㎝~307㎝이며, 돌덧널 규모는 길이 76㎝~403㎝, 너비 23㎝~95㎝까지 다양한 크기로 확인되었다. 벽석은 가로 또는 세로 눕혀 쌓기와 세워쌓기를 섞어 가며 쌓아 올린 경우와, 양 단벽에 편평한 돌 1매를 세우고 그 위를 쌓아 올린 경우가 보였다. 바닥은 대부분 작은 냇돌 또는 깬돌을 깔아 관 받침 시설을 설치하였으며, 일부는 바닥 전면에 편평한 돌을 깔아 설치하였다.

굴방무덤은 북쪽 구릉의 정상부와 남쪽 경사면 일대에 조성되었으며 굴방무덤 간의 겹침 상태로 확인되었다. 굴방무덤은 앞트기식 돌방무덤과 굴식 돌방무덤 모두 있었으며, 굴식 돌방무덤이 3배 정도 더 많이 조성되었다. 앞트기식 돌방무덤은 평면 형태가 장방형으로 전체 규모는 300㎝~400㎝이며, 시신을 안치하였던 널방[현실(玄室)]의 규모는 210㎝~340㎝이다. 널방 안에는 시신을 안치하기 위한 시설[시상대(屍床臺)]이 2회~4회 정도 확인되어 추가장이 최소 2회~3회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었다. 굴식 돌방무덤은 평면 형태가 장방형인 경우 봉분의 형태가 타원형이며, 방형은 봉분의 형태가 원형에 가깝다. 봉분의 둘레에는 도랑 내부 또는 인근에 연질 옹을 따로 매납하여 제사 행위를 하였으며, 봉분 주위에 딸려 조성된 순장의 일종인 작은 무덤[배장묘(陪葬墓)] 1기~3기가 확인되었다. 널방으로 들어가는 통로인 널길[연도(羨道)]은 중앙 또는 우측, 좌측에 위치하였으며, 100㎝ 정도로 짧게 설치하였다. 무덤길[묘도(墓道)]은 형태가 타원형으로 100㎝ 정로 짧게 설치하였다. 김해 화정 고분군 내 북쪽 구릉의 고분은 6세기 후반~8세기가 중심 조성 시기이며, 남쪽 구릉의 고분은 4세기 후반~5세기 전반이 중심 조성 시기이다.

[출토 유물]

유물은 총 1,630여 점이 출토되었는데 삼국 시대 토기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매장자의 머리와 발치 쪽인 남쪽과 북쪽 단벽 아래에 주로 매납하였다. 출토된 토기는 굽다리 접시[외절 구연 고배(外切 口緣 高杯)]와 화로 모양 그릇 받침[노형 기대(爐形 土器)], 바리 모양 그릇 받침, 원통 모양 그릇 받침, 넓은 입 단지, 작은 그릇 받침, 짧은 목 항아리, 손잡이 잔 토기가 주종이다. 이외에 손칼과 화살촉, 도끼, 낫, 덩이쇠, 망치, 집게 등의 소량의 철기와 함께 금동제 귀걸이 및 장신구 재료로 사용된 굽은옥, 구슬도 소량 출토되었다. 특히, 금관가야의 대표 유물인 그릇의 입구가 바깥으로 꺽인 굽다리 접시와 화로 모양 그릇 받침이 다수 출토되었지만, 대가야와 소가야, 아라가야, 신라 토기도 함께 출토된 점이 주목된다.

[현황]

김해 화정 고분군 자리에는 현재 아파트와 주택, 상가, 도로 등이 조성되어 있어 유적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잔존 상태가 양호한 고분[18호~23호, 47호·48호]과 청동기 시대 고인돌의 하부 매장 시설, 집자리 등 10기는 화정유적공원으로 이전, 복원하여 야외 전시를 하고 안내판을 세워, 유적의 보존 관리와 역사 교육 현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출토 유물은 국립김해박물관에서 소장하여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김해 화정 고분군은 김해시에서 처음 확인된 삼국 시대 가야 독무덤군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금관가야의 최고 수장급 고분인 김해 대성동 고분군(金海 大成洞 古墳群)보다 낮은 지위의 고분군이지만, 금관가야의 전성기와 쇠퇴기, 고분의 변천 과정과 사회상을 잘 보여 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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