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530
한자 竹谷里 古墳群
영어공식명칭 Ancient Tombs in Jukgok-ri
이칭/별칭 김해 죽곡리 유적,죽곡리 고분,김해 죽곡리 고분군,김해 죽곡리 고분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죽곡리 산72
시대 고대/삼국 시대/가야
집필자 김의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4년 - 죽곡리 고분군 창원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실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6년 5월 22일~2006년 8월 7일 - 죽곡리 고분군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에서 시굴 조사 실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6년 10월 2일~2007년 12월 4일 - 죽곡리 고분군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실시
소재지 죽곡리 고분군 -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죽곡리 산72 지도보기
출토 유물 소장처 국립김해박물관 - 경상남도 김해시 가야의길 190[구산동 232]지도보기
성격 고분군
양식 구덩식 돌덧널무덤|독무덤|덧널무덤|돌방무덤
크기(높이,지름) 1m~3.9m[구덩식 돌덧널무덤 돌덧널 길이]|0.3m~1.4m[구덩식 돌덧널무덤 돌덧널 너비]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죽곡리에 있는 삼국 시대 가야 고분군.

[개설]

죽곡리 고분군(竹谷里 古墳群)은 삼국 시대 가야의 구덩식 돌덧널무덤을 비롯하여 독무덤과 덧널무덤, 돌방무덤 등 다양한 무덤이 확인된 5세기 대 금관가야의 중소형 고분군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유적이다. 또한 삼국 시대 가야 고분군이 조성된 이후 고려 시대~조선 시대의 분묘도 다수 조성되어 있어, 다양한 시기의 무덤이 연속적으로 한 공간 내에서 매장 공간으로 활용된 유적이다.

[위치]

죽곡리 고분군김해시 진영읍 죽곡리 산72번지에 있다. 진례분지(進禮盆地)의 북서쪽에 형성된 태숭산[312m]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의 비탈면 해발 130m~145m에 자리한다. 반경 1㎞ 이내에는 남서쪽으로 인접하여 청동기 시대 집자리와 삼국 시대 가야의 집자리, 조선 시대 고상 가옥 건물터 등이 확인된 김해 의전리 27번지 유적이 분포하고 있으며, 북동쪽으로는 삼국 시대~통일신라 시대로 추정되는 구덩식 돌덧널무덤과 굴식 돌방무덤이 확인된 고모리 고분군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 시행하였던 부산신항 제2-1공구[한림정~진례] 배후 철도 건설 공사 구간 사업의 일환으로 죽곡리 고분군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었다. 최초 조사는 2004년 창원대학교 박물관의 지표 조사로 이루어졌으며, 연질 및 경질 토기가 발견된 유물 산포지 세 곳을 확인하였다. 이후 2006년 5월 22일~동년 8월 7일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의 시굴 조사와 2006년 10월 2일~2007년 12월 4일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의 발굴 조사를 통해 고분군의 존재가 드러났다. 발굴 조사를 통해 2개 지구[가 지구·나 지구]에서 삼한 시대의 집자리 13기, 삼국 시대 가야의 구덩식 돌덧널무덤 117기와 덧널무덤 1기, 독무덤 11기, 구덩묘 1기, 매납 구덩이 1기, 대형 구덩이 1기, 그리고 고려 시대의 분묘 49기와 조선 시대의 분묘 239기 등 총 443기를 확인하였다. 삼국 시대 가야 고분군의 대부분은 나 지구에 집중 조성되어 있었다.

[형태]

유적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구덩식 돌덧널무덤은 태숭산에서 동남쪽 방향으로 뻗어 내린 구릉 비탈에 117기가 집단을 이루면서 조성되어 있었다. 구덩식 돌덧널무덤의 규모는 무덤에 돌덧널을 넣기 위해 판 구덩이의 경우 최대 1.4m~5m이며, 돌덧널은 길이 1m~3.9m, 너비 0.3~1.4m 정도의 가늘고 긴 방형 형태를 띠고 있었다. 돌덧널을 조성하기 위한 벽은 돌을 가로 또는 세로 눕혀쌓기와 세워쌓기를 섞어 가며 쌓아 올렸으며, 바닥에서는 시신을 안치하기 위해 돌로 만든 낮은 받침대[관대(棺臺)]와 밑받침[시상석(屍床石)] 등을 일부 확인하였다. 특히, 죽곡리 고분군의 구덩식 돌덧널무덤에서는 당시 고분 축조 과정 중의 여러 가지 의례 행위가 확인되었다. 이는 벽석과 시신을 안치하였던 밑받침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동일한 종류의 토기 몸통과 다리 부분을 의도적으로 분리하여 따로 묻거나, 덮개돌 상부와 봉토 내부에 완형의 토기나 철기를 따로 묻은 사례 등이다. 구릉의 정상부와 서쪽 구릉 비탈면에 분포한 구덩식 돌덧널무덤의 조성 시기는 5세기 전반~5세기 중반이며, 동쪽 구릉 비탈면의 구덩식 돌덧널무덤의 조성 시기는 5세기 후반~6세기 초반이다.

[출토 유물]

유물은 죽곡리 고분군에서 가장 많이 확인된 구덩식 돌덧널무덤에서 1,242점이 출토되었으며, 토기류는 722점이다. 토기류는 굽다리 접시와 원통 모양의 그릇 받침, 바리 모양의 그릇 받침, 그리고 긴 목 항아리와 짧은 목 항아리, 손잡이 잔 등으로 다양하다. 철기류는 화살촉과 도끼, 낫, 검, 재갈, 갑옷[갑주(甲胄)]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출토된 토기들 가운데에는 금관가야 양식의 굽다리 접시뿐만 아니라 아라가야·비화가야·소가야·신라 양식의 굽다리 접시도 있어 주목된다.

[현황]

죽곡리 고분군은 발굴 조사 후 부산신항 제2-1공구[한림정~진례] 배후 철도 건설 공사 구간 사업으로 인해 철도가 조성됨에 따라 흔적을 확인할 수 없는 상태이다. 현재 출토 유물은 국립김해박물관에서 소장하여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죽곡리 고분군진례분지 내에서 처음으로 금관가야의 대규모 중소형 고분군이 확인된 유적으로, 당시 진례분지 일대를 다스렸던 정치 집단의 중상위 지배층 고분군으로 추정된다. 각 고분의 규모와 출토 유물의 양상으로 볼 때, 5세기 대 금관가야 쇠퇴기의 고분 특징과 타 지역 간의 토기 교류를 잘 보여 주는 유적이다. 또한 고분의 다양한 축조 방법과 축조 과정에서의 매장 의례 행위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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