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5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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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 望德里 古墳群 |
영어공식명칭 | Ancient Tombs in Mangdeok-ri Gimhae |
이칭/별칭 | 김해 망덕리 유적,김해 망덕리 공장 신축 부지 내 유적,망덕리 고분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주촌면 망덕리 산2-2 |
시대 | 선사/청동기,고대/초기 국가 시대,고대/삼국 시대,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양화영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8년 2월 20일~2008년 3월 20일 - 김해 망덕리 고분군 경남문화재연구원에서 지표 조사 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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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8년 7월 4일~2008년 10월 30일 - 김해 망덕리 고분군 경남문화재연구원에서 시굴 조사 실시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0년 10월 18일~2011년 6월 3일 - 김해 망덕리 고분군 동서문물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실시 |
소재지 | 김해 망덕리 고분군 - 경상남도 김해시 주촌면 망덕리 산2-2 |
출토 유물 소장처 | 국립김해박물관 - 경상남도 김해시 가야의길 190[구산동 232] |
성격 | 고분군 |
양식 | 덧널무덤|돌덧널무덤|움무덤|돌 뚜껑 움무덤|돌널무덤|널무덤|독무덤|돌방무덤 |
크기(높이,지름) | 156㎝~560㎝[삼국 시대 덧널무덤 길이]|70㎝~365㎝[삼국 시대 덧널무덤 너비]|32㎝~188㎝[삼국 시대 덧널무덤 깊이]|210㎝~275㎝[삼국 시대 돌방무덤 길이]|120㎝~155㎝[삼국 시대 돌방무덤 너비]|100㎝~340㎝[고려 시대~조선 시대 무덤 길이]|40㎝~120㎝[고려 시대~조선 시대 무덤 너비]|26㎝~121㎝[고려 시대~조선 시대 무덤 깊이] |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주촌면 망덕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조선 시대 고분군.
[위치]
김해 망덕리 고분군(金海 望德里 古墳群)은 김해시 주촌면 망덕리 산2-2번지에 있다. 북쪽의 황새봉[272.8m]과 주지봉[273.4m]에서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소구릉의 남서면에 해당한다. 유적의 동쪽으로는 조만강(潮滿江)이 흐르는데, 조만강은 김해시를 관류하는 해반천(海畔川)과 합류하여 서낙동강(西洛東江)으로 유입된다. 김해 망덕리 고분군은 북동쪽으로 천곡리 고분군, 남서쪽으로 김해 양동리 고분군(金海 良洞里 古墳群), 후포 고분군과 마주 보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2008년 2월 20일~동년 3월 20일 실시한 경남문화재연구원의 공장 신축 부지에 대한 지표 조사 결과에 따라, 같은 해 7월 4일~그해 10월 30일 경남문화재연구원에서 유구의 존재 유무 확인을 위한 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시굴 조사는 4개 구역으로 나누어 조사하였으며, 일부 구간에서 삼국 시대의 덧널무덤[목곽묘]과 돌덧널무덤[석곽묘], 조선 시대의 움무덤[토광묘]을 확인하였다. 발굴 조사는 시굴 조사에서 유구를 확인한 구역에 대하여 2010년 10월 18일~2011년 6월 3일 동서문물연구원에서 실시하였다. 조사의 편의를 위해 유적이 위치한 구릉의 소곡부를 기준으로 1구역과 2구역으로 구분하였는데, 유구는 2구역보다 1구역에서 많은 수가 조사되었고, 구릉 말단부의 남쪽에 밀집·분포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의 돌 뚜껑 움무덤[석개 토광묘]과 돌널무덤[석관묘], 원삼국 시대의 널무덤[목관묘]과 독무덤[옹관묘], 삼국 시대의 덧널무덤과 움무덤, 돌널무덤, 돌덧널무덤, 돌방무덤[석실묘], 독무덤, 그리고 고려 시대~조선 시대의 움무덤과 집자리 등 557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의 중심 성격은 원삼국 시대~삼국 시대 고분군이다.
[형태]
청동기 시대 무덤은 해발 40m 이하의 구릉 비탈에 2기씩 소군을 이루며 분포하는데, 매장 주체부에 따라 돌 뚜껑 움무덤 6기, 깬돌[할석]로 축조한 돌널무덤 2기, 판석으로 조립한 돌널무덤 2기를 조사하였다. 내부의 바닥에 주검받침[시상대]을 설치한 것도 있었다. 유물은 붉은 간 토기[적색 마연 토기]와 간 돌칼[마제 석검], 돌 화살촉[석촉], 곱은옥[곡옥]이 출토되었는데, 붉은 간 토기는 돌널 바깥에 부장하기도 하였다. 청동기 시대 무덤의 조영 시기는 송국리 문화 단계에 해당한다.
원삼국 시대의 널무덤은 해발 23m~25m 선상에서 등고선과 평행하는 방향으로 3기를 확인하였다. 널[목관]의 규모나 보강토, 토층 양상으로 볼 때 판재식이다. 유물로 나온 주머니호와 쐬뿔잡이 항아리[조합 우각형 파수부호], 굽다리 접시 토기[두형 토기], 바리[완] 등의 토기류는 관의 상부나 충진토 상부에 부장하였고, 쇠칼[철검]과 쇠투겁창[철모], 쇠도끼[철부] 등의 철기류는 충진토의 바닥이나 관의 상부에 부장하였다. 무덤의 조영 시기는 기원전 1세기 전엽~기원전 1세기 후엽이다.
삼국 시대의 무덤으로는 덧널무덤 321기와 움무덤 28기, 돌덧널무덤 50기, 돌방무덤 6기, 독무덤 32기를 조사하였다. 덧널무덤과 돌덧널무덤은 유적 전역에 분포하며, 등고선의 유동 방향과 나란하게 조성되었다. 덧널무덤은 대부분이 단독식이나 이혈 주부곽식 15기와 동혈 주부곽식 4기, 이중곽 덧널무덤 6기도 조사되었다. 덧널무덤의 규모는 길이가 156㎝~560㎝, 너비가 70㎝~365㎝, 깊이가 32㎝~188㎝이며, 내부에 할석과 판석을 이용하여 주검받침이나 널받침[관대]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또 일부 덧널에서는 목질흔이 확인되거나 관정이나 꺾쇠가 확인되어 덧널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 유물은, 단독식은 덧널의 내부에 부장하였으며, 주부곽식은 딸린덧널[부곽]에 짧은 목 항아리[단경호]와 화로형 토기[노형 토기], 긴 목 항아리[장경호] 등의 대형 토기류를 부장하였고, 으뜸 덧널[주곽] 내부에는 굽다리 접시[고배]와 입 큰 작은 단지[광구 소호] 등의 소형 토기를 부장하였다.
돌덧널무덤은 구덩식[수혈식]으로, 대부분 단독으로 조성되었으나 일부는 선대의 널무덤이나 덧널무덤과 중복된 양상이 확인된다. 돌덧널의 규모는 길이 190㎝~365㎝, 너비 40㎝~190㎝이고,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다. 벽석은 대부분 할석을 평적하여 축조하였는데, 일부는 평적과 수적을 혼축하였다. 일부 돌덧널은 바닥에 석재를 띄엄띄엄 깔아서 널받침으로 활용하였다. 유물은, 토기류는 양 단벽이나 한쪽 단벽에서 확인되었고, 철기류나 장신구류는 주검의 머리가 놓인 방향을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서 확인되었다. 독무덤은 주옹과 부옹이 결합된 이음 독무덤[합구식 옹관]이며, 주옹은 장동옹, 부옹은 파수부옹과 짧은 목 항아리, 파수부호, 완 등을 사용하였다. 일부는 소형 할석을 사용하여 옹관을 고정하였으며, 유물은 입 큰 작은 단지와 옹기, 쇠도끼, 은제 고리[환], 유리제 구슬 등이 출토되었다.
돌방무덤은 해발 23m~25m 선상에 위치하며, 굴식[횡혈식]으로 판단된다. 평면 형태는 방형이며, 규모는 길이가 210㎝~275㎝, 너비가 120㎝~155㎝, 면적이 2.5㎡~4.6㎡인 중소형이다. 벽석은 천석으로 평적하여 상단부가 갈수록 내경하도록 축조하였다. 널길[연도]은 5기를 확인하였는데, 1기[1-1호]는 동쪽, 나머지는 서쪽에 위치한다. 1-2호에서 문비석으로 추정되는 석재를 확인하였고, Ⅱ-1호에서는 반원형의 도랑[주구]을 조사하였다. 돌방무덤의 주검받침은 모두 할석을 이용하여 전면 혹은 일부에 조성하였고, 2회~5회 추가장을 한 흔적이 있었다. 유물은 주검받침 상부에서 뚜껑 달린 굽접시[유개고배]와 접시 등 소형 기종의 토기류가 확인되었고, 짧은 목 항아리와 긴 목 항아리 등의 대형 토기류는 주검받침 바깥이나 널길에 부장하였다. 삼국 시대 무덤의 조영 시기는 4세기 중엽~7세기 중반이다.
고려 시대~조선 시대 무덤은 널무덤 61기와 움무덤 40기가 등고선과 직교하는 남-북향으로 조성되어 있다. 규모는 길이가 100㎝~340㎝, 너비가 40㎝~120㎝, 깊이가 26㎝~121㎝이다. 널무덤에서는 목관흔과 목관 보강토, 관정이 확인되었다. 일부는 회곽묘(灰槨墓)와 유사한 형태도 있고, 무덤 2기가 나란하게 배치된 형태도 있었다. 중소형은 목관을 사용하지 않은 움무덤이다. 무덤의 내부 시설로는 묘광 바닥에 요갱을 설치한 것과 벽감[감실]을 설치한 것이 있었다. 유물은 널의 보강토 상부와 내부, 벽감에서 청자, 분청사기, 백자, 청동제 거울, 청동제 합, 청동제 숟가락과 젓가락, 철제 가위가 출토되었다. 고려 시대~조선 시대 무덤은 15세기에서 16세기에 조성되었다.
[출토 유물]
토기류와 철기류, 청동기류, 석기류 등 다양한 재질로 만든 유물 3,487점이 출토되었는데, 삼국 시대 덧널무덤과 돌덧널무덤에서만 철기류 1,137점과 토기류 1,716점 등 총 2,853점이 출토되었다. 토기류는 붉은 간 토기와 주머니호, 쐬뿔잡이 항아리, 오리 모양 토기[압형 토기], 뿔잔[각배], 굽다리 접시 토기, 화로 모양 토기, 그릇 받침[기대], 항아리, 컵형 토기, 뚜껑 달린 굽접시, 굽다리 긴 목 항아리[대부직구호], 청자, 분청사기, 백자 등 청동기 시대~조선 시대의 다양한 기형 기종과 소량의 특수 용도 토기가 출토되었고, 토제품인 가락바퀴[방추차]와 그물추[어망추]도 소량 확인되었다. 철기류는 갑옷과 투구[갑주], 목 가리개[경갑], 띠고리[교구], 고리자루 큰칼[환두대도], 꺾쇠, 미늘쇠[유자이기], 쇠 투겁창, 쇠 화살촉, 손칼[도자], 쇠도끼, 낫, 덩이쇠 등 다양한 무기류 및 농공구류가 출토되었다. 이외에도 소량이지만 석기류인 간 돌칼, 돌 화살촉[석촉]과 청동제인 원통형[통형] 동기, 거울, 합, 숟가락, 젓가락과 장신구인 목걸이, 귀걸이, 구슬이 출토되었다.
[현황]
발굴 조사 완료 후 김해 망덕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은 국립김해박물관에서 소장하여 관리하고 있다. 현재 고분군 자리에는 공장이 신축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김해 망덕리 유적은 청동기 시대 송국리 단계에서 형성되기 시작하여 원삼국 시대와 삼국 시대를 거쳐 고려 시대~조선 시대에 이르는 무덤 유적으로, 유적의 중심이 되는 시기는 4세기 대~7세기 대이다. 김해 망덕리 고분군을 통해 덧널무덤에서부터 돌방무덤에 이르는 삼국 시대 무덤의 변천 양상을 알 수 있으며, 주변의 김해 양동리 고분군과 김해 대성동 고분군(金海 大成洞 古墳群) 등 초기 국가 시대와 삼국 시대 대형 고분군과의 비교 검토를 통해 이 시기 고분 집단 간의 위계와 성격 및 교류 양상 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