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5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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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 長游和尙 舍利塔 |
이칭/별칭 | 장유화상 사리탑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탑과 부도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대청계곡길 170-563[대청동 1129]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연진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3년 8월 6일 - 김해 장유화상 사리탑 문화재자료 제31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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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김해 장유화상 사리탑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김해 장유화상 사리탑 경상남도 문화재자료에서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 지정 |
현 소재지 | 장유암 - 경상남도 김해시 대청계곡길 170-563[대청동 1129] |
성격 | 사리탑 |
관련 인물 | 장유화상(長遊和尙) |
재질 | 돌 |
크기(높이) | 220㎝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대청동 장유암에 있는, 고려 후기~조선 전기에 건립한 장유화상의 사리탑.
[개설]
김해 불모산(佛母山) 정상 장유암(長遊庵)에 있는 김해 장유화상 사리탑(金海 長游和尙 舍利塔)은 가락국 수로왕 비 허황옥(許黃玉)[?~188]의 오빠로 전하는 장유화상(長遊和尙)[속명 허보옥]의 사리를 모신 탑이다. 장유화상은 허왕후와 함께 가락국에 도착한 후 장유산에 연화 도장을 열어 불법을 전하였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가락국기」에 의하면, 가락국의 8대 왕인 질지왕이 452년 왕후사(王后寺)를 창건한 뒤 500년 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장유사의 창건 시기는 950년대와 통일 신라 후기~고려 전기로 보는 두 가지 학설이 있다. 고려 시대 장유사는 왕후사보다 김해 지역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는데, 1469년(예종 1)의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에는 장유사가 나오나, 1530년(중종 25)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나타나지 않아 16세기에는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건립 경위]
김해 장유화상 사리탑은 여러 번의 전란과 재난으로 많이 훼손되었으나, 남아 있는 부자재로 보아 고려 후기~조선 전기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한다.
[위치]
김해 장유화상 사리탑은 김해시 대청동 1129번지 장유암 대웅전 뒤편에 있으며, 사리탑 주변은 사방으로 돌 난간이 둘러져 있다. 장유사가 있는 불모산에는 장유대청계곡 누리길이 조성되어 있어 김해 시민들이 많이 찾는다.
[형태]
팔각 원당형으로 높이는 220㎝이며, 네모난 지대석 위에 팔각형의 하대석이 있다. 하대석 위에 연꽃 모양의 기단을 놓았고 그 위에 탑신이 있다. 팔각 기단 면에는 문양을 넣고, 중대석의 팔각 면석에는 문양 없이 모서리기둥인 우주(隅柱)를 양각하였다. 상륜부와 탑신부는 일부가 없어진 뒤 복원하였다. 옥개석(屋蓋石) 끝은 반전을 많이 주었고, 상륜부도 잘 남아 있는 편이다.
[현황]
김해 장유화상 사리탑은 1983년 8월 6일 문화재자료 제31호로 지정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는 삭제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에서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되었다. 김해 장유화상 사리탑 주변에는 일제 강점기에 제작한 돌 난간이 있으며, ‘가락국사장유화상기적비’가 함께 세워져 있다. 비석은 1915년 장유암 주지 선포담이 세웠으며, 김해 수로왕릉(金海 首露王陵) 숭선전 참봉 허식이 비문을 작성하였다. 비석에는 허황옥과 장유화상에 관련한 일화가 남겨져 있다.
[의의와 평가]
김해 장유화상 사리탑은 김해 지역 가락국의 불교를 일으켰다고 전해지는 장유화상의 사리가 모셔진 탑으로, 전체적인 형상이 잘 남아 있는 편이다. 고려 후기~조선 전기 승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문양이 비교적 뚜렷하게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화려하진 않지만 조형미가 뛰어나다. 김해 장유화상 사리탑은 불모산과 더불어 김해 지역 불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