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5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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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 陵洞 遺蹟 |
영어공식명칭 | Relics of Neungdong, Gimhae |
이칭/별칭 | 능동 유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삼문동 63-9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가야,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의중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6년 12월 2일~1997년 2월 10일 - 김해 능동 유적 울산대학교 박물관에서 1차 발굴 조사 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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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7년 7월 16일~1997년 9월 12일 - 김해 능동 유적 울산대학교 박물관에서 2차 발굴 조사 실시 |
소재지 | 김해 능동 유적 - 경상남도 김해시 삼문동 63-9 |
성격 | 고분군|가마 |
양식 | 덧널무덤|구덩식 돌덧널무덤 |
크기(높이,지름) | 270㎝~430㎝[덧널무덤 길이]|82㎝~210㎝[덧널무덤 너비]|135㎝~510㎝[구덩식 돌덧널무덤 길이]|80㎝~230㎝[구덩식 돌덧널무덤 너비]|8m[1호 토기 가마 길이]|1.4m~1.85m[1호 토기 가마 너비]|60㎝[1호 토기 가마 높이]|11m~13m[기와 가마 길이]|1.5m~2.5m[기와 가마 너비]|60m~120m[기와 가마 깊이] |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삼문동에 있는 삼국 시대 가야 고분 및 삼국 시대·조선 시대 가마 유적.
[개설]
김해 능동 유적(金海 陵洞 遺蹟)은 5세기 대 김해 지역의 금관가야 고분이 중심인 유적으로, 덧널무덤과 구덩식 돌덧널무덤 등 다양한 형태의 고분과 삼국 시대의 토기 가마, 조선 시대의 기와 가마가 확인되었다.
[위치]
김해 능동 유적은 김해시 삼문동 63-9번지에 있다. 김해시의 북서쪽에 형성된 남동-북서 방향의 용지봉[744m]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 비탈 말단부의 해발 49m~67m에 자리한다. 인접한 주변 유적으로 조선 시대의 김해 삼문동 건물터가 분포하고 있으며, 청동기 시대 집자리와 조선 시대 분묘가 확인된 김해 삼문리 능동 유적도 위치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시행하였던 장유 신도시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조사가 실시되면서 김해 능동 유적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발굴 조사는 두 차례에 걸쳐 울산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하였는데, 1차 조사는 1996년 12월 2일~1997년 2월 10일에 하였고, 2차 조사는 1997년 7월 16일~동년 9월 12일 이루어졌다. 발굴 조사 구역은 총 3개 지구[가·나·다 지구]로 구분하였다. 조사 결과 가 지구에서 삼국 시대의 덧널무덤[목곽묘] 1기, 구덩식 돌덧널무덤[수혈식 석곽묘] 8기, 돌방무덤[석실묘] 1기, 토기 가마 2기와 조선 시대의 석렬 4기를 확인하였다. 나 지구에서는 덧널무덤 27기와 구덩식 돌덧널무덤 42기, 그리고 조선 시대의 기와 가마 1기를, 다 지구에서는 조선 시대의 기와 가마 2기를 조사하였다. 김해 능동 유적의 중심 유구인 가야 고분의 대부분은 나 지구에 집중되어 있었다.
[형태]
삼국 시대 고분은 총 79기로 덧널무덤과 구덩식 돌덧널무덤이 대다수를 차지하였다. 덧널무덤과 구덩식 돌덧널무덤은 주축 방향이 등고선과 평행한 남-북 방향이며, 무덤 간의 중복 없이 독립적으로 조성되었다. 덧널무덤의 전체 규모는 길이가 270㎝~430㎝, 너비가 82㎝~210㎝이며, 덧널의 규모는 길이 215㎝~384㎝, 너비 54㎝~135㎝였다. 덧널무덤의 바닥에서는 시신 안치를 위해 크기 20㎝ 내외의 돌을 설치한 시상석(屍床石)도 일부 확인하였다. 구덩식 돌덧널무덤의 전체 규모는 길이가 135㎝~510㎝, 너비가 80㎝~230㎝였으며, 돌덧널의 규모는 길이 150㎝~405㎝, 너비 35㎝~100㎝였다. 벽석은 대체로 1단~3단 정도만 남았으며, 가로 또는 세로 눕혀 쌓기와 세로 세워쌓기를 혼용하여 쌓아 올렸다. 바닥에 시신 안치를 위한 받침대인 관대(棺臺) 등의 시상석이 일부 확인되는 구덩식 돌덧널무덤도 있었다. 덧널무덤과 구덩식 돌덧널무덤은 규모에 있어 500㎝ 미만인 중소형에 속하며, 장단 비율이 2.5:1 이하인 장방형에 가깝다. 고분의 중심 조성 시기는 5세기 대이다.
김해 능동 유적 내 생산 유구로는 삼국 시대의 토기 가마 2기와 조선 시대의 기와 가마 3기를 확인하였다. 삼국 시대 토기 가마는 구릉 비탈 말단부 해발 58.5m~60.5m상에 등고선과 직교한 형태로 나란히 2기가 축조되었다. 토기 가마는 반지하식 구조로 연소부와 소성실, 굴뚝, 회구부, 천장부가 비교적 잘 남아 있었다. 규모는 1호 토기 가마의 경우, 전체 길이가 8m, 너비가 1.4m~1.85m, 바닥에서 천장부까지의 높이가 60㎝였다. 2호 토기 가마는 잔존 길이가 6.5m, 너비가 1.7m, 바닥에서 천장부까지의 높이가 70㎝~80㎝였다. 삼국 시대의 토기 가마는 출토 유물과 자연 과학 분석[고고지자기(考古地磁氣)] 연대 결과를 토대로 6세기 중반에 축조되었다고 본다.
조선 시대의 기와 가마는 구릉 비탈 말단부 해발 47m~55m상에 등고선과 직교하여 축조되었다. 3기 모두 반지하식 구조로 축조되었으며, 소성부와 연소부, 화구가 비교적 잘 남아 있었다. 규모는 길이가 11m~13m, 너비가 1.5m~2.5m였고, 깊이는 소성부를 기준으로 60m~120m였다. 조선 시대의 기와 가마는 출토된 기와 문양과 자연 과학 분석 연대 결과를 토대로 축조 시기를 15세기~16세기로 추정한다. 특히, 3호 기와 가마에서 수습된 기와 중에서 ‘기유삼월일(己酉三月日)’이 새겨진 명문 기와가 확인되었는데, 기유년은 육십갑자(六十甲子)의 46번째 해를 가리키는 것으로 연대는 1429년(세종 11)에 해당하여 가마의 축조 시기를 뒷받침하였다.
[출토 유물]
출토 유물은 토기 및 기와 515점, 철기류 283점, 옥석류 56점으로 총 819점이다. 삼국 시대 고분에서 출토된 토기의 종류는 굽다리 접시와 긴 목 항아리, 짧은 목 항아리, 원통 모양의 그릇 받침, 등잔형 토기와 손잡이 잔 등 다양하다. 철기류는 철 낫과 철 도끼, 철검, 덩이쇠, 철제 갑옷 편, 등자, 재갈 등 다양한 무기류와 마구류, 농공구류가 출토되었다. 옥석류는 굽은 구슬과 둥근 모양의 구슬 등의 장신구도 출토되었다. 특히, 김해 금관가야의 대표 유물인 접시 입구가 바깥으로 꺾인 굽다리 접시[외절 구연 고배(外切 口緣 高杯)]와 함께 아라가야·비화가야·신라의 굽다리 접시도 출토되었으며, 21호 덧널무덤에서 왜계 토기로 추정되는 내만 구연 항아리[내만구연호(內彎口緣壺)]가 출토된 점도 주목된다.
[현황]
장유 신도시 사업으로 아파트 및 주택 등이 조성됨에 따라 현재 김해 능동 유적의 흔적은 확인할 수 없다.
[의의와 평가]
김해 능동 유적은 5세기 중반 이후 금관가야의 쇠퇴기를 잘 보여 주는 중소형 고분 중심의 집단 묘역 유적이다. 또한 김해 지역과 타 지역과의 토기 교류와 함께 김해 지역이 점차 신라화되어 가는 과정을 잘 보여 주는 중요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