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523
한자 金海 禮安里 古墳群
영어공식명칭 Ancient Tombs in Yean-ri, Gimhae
이칭/별칭 예안리 고분,예안리 고분군,김해 예안리 고분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예안리 369-6
시대 고대/삼국 시대/가야
집필자 양화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76년 5월~1980년 1월 - 김해 예안리 고분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실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76년 5월~1980년 1월 - 김해 예안리 고분군 부산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실시
문화재 지정 일시 1978년 6월 23일연표보기 - 김해 예안리 고분군 사적 제261호 지정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9년 - 김해 예안리 고분군 두류문화연구원에서 시굴 조사 실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9년 10월 7일~2019년 12월 6일 - 김해 예안리 고분군 두류문화연구원에서 학술 발굴 조사 실시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김해 예안리 고분군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소재지 김해 예안리 고분군 -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예안리 369-6 지도보기
출토 유물 소장처 부산대학교 박물관 -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산대학로63번길 2[장전동 40]
출토 유물 소장처 대성동고분박물관 - 경상남도 김해시 가야의길 126[대성동 434]지도보기
성격 고분군
양식 덧널무덤|돌덧널무덤|돌방무덤|독널무덤
크기(높이,지름) 2.3m~6m[덧널무덤 길이]|2m~2.8m[덧널무덤 너비]|2.7m~4.2m[돌덧널무덤 길이]|0.98m~1.85m[돌덧널무덤 너비]|2.3m 내외[돌방무덤 길이]|2.2m[돌방무덤 너비]
소유자 김해시
관리자 김해시
문화재 지정 번호 사적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예안리 시례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가야 고분군.

[위치]

김해 예안리 고분군(金海 禮安里 古墳群)김해시 대동면 예안리 369-6번지에 있다. 소구릉인 마산[12.2m]의 남쪽 경사면과 이어지는 낮은 구릉에 자리하는데, 육계사주(陸繫沙洲) 지형에 해당한다. 북서쪽에서 까치산[341.6m]이, 북동쪽에서 백두산[354.3m]이 에워싸고 있고, 북쪽으로는 소하천인 예안천이 관류하여 남쪽의 서낙동강(西洛東江)에 유입되는데, 이 일대는 고 김해만(古 金海灣)과 연접해 해퇴 작용이 활발한 저습한 구릉지로서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다. 김해 예안리 고분군의 동쪽 가까이에는 마산 고분군이 위치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76년 5월~1980년 1월 실시한 국립중앙박물관의 1차례 발굴 조사와 부산대학교 박물관의 4차례 발굴 조사를 통해 신석기 시대의 돌무지[적석] 유구와 삼국 시대의 덧널무덤[목곽묘], 돌덧널무덤[석곽묘], 돌방무덤[석실묘], 독널무덤[옹관묘] 등 무덤 212기와 유물 2,000여 점, 사람 뼈[인골] 170여 구를 확인하였다. 이후 2019년 김해 예안리 고분군 정비를 위한 학술조사의 일환으로 두류문화연구원이 시굴 조사[면적 4,692㎡]를 실시하였으며, 조사 결과 유구를 확인한 구역[면적 970㎡]에 대해 같은 해 10월 7일~동년 12월 6일 학술 발굴 조사를 하였다. 조사 결과, 삼국 시대의 덧널무덤, 돌덧널무덤 40기와 유물 344점, 사람 뼈 31구를 확인하였다.

[형태]

발굴 조사를 통해 고분군의 축조 시기보다 이른 돌무지 유구 2기를 확인하였는데, 평면 형태는 원형이다. 빗살무늬[즐문] 토기 조각과 겹아가리 토기[이중 구연 토기] 조각이 출토되어 유구의 조성 시기는 신석기 시대 후기~신석기 시대 말기로 추정된다. 삼국 시대 무덤은 봉분이 확인되지 않았으며, 평면에서 중복된 양상이 많이 보여 무덤의 선후 관계가 비교적 분명하다. 주된 무덤은 덧널무덤과 돌덧널무덤이다.

덧널무덤은 김해 예안리 고분군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무덤으로, 68기를 확인하였다. 주축 방향은 동-서향이 대부분이며, 주부곽식 덧널무덤 5기를 제외한 63기는 단독식 덧널무덤이다.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며, 바닥 시설은 무시설이 대부분이다. 규모는 길이 2.3m~6m 이상, 너비 2m~2.8m로 다양한데, 주부곽식은 상대적으로 대형 무덤에 속한다. 돌덧널무덤은 구덩식[수혈식] 154기를 조사하였다. 주축 방향은 동-서향이 대부분이며,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다. 규모는 길이가 2.7m~4.2m, 너비가 0.98m~1.85m이다. 벽석은 평적과 수적을 혼용하여 축조하였고, 바닥 시설은 무시설, 피장자의 안치부만 주검받침[시상]을 한 것, 깬돌을 띄엄띄엄 깔아 주검받침으로 한 것을 확인하였다. 돌덧널무덤은 축조 시기의 선후에 따라 벽석의 축조 방법이나 바닥 시설의 변화가 보였다. 유물은, 토기류는 발 아래쪽에서 출토되었고, 철기류는 널의 양 장벽 쪽에서, 손칼은 시신의 손 부근에서 출토되었다.

독널무덤은 대부분 이음 독무덤[합구식]이며, 규모는 1m 이하로 소형이다. 내부에서 신생아나 유아의 뼈가 출토되었는데, 독널무덤은 대부분 돌덧널무덤과 나란히 조영되어 있어 돌덧널의 배장묘이다. 돌방무덤은 별도의 널길[연도]이 없는 앞트기식[횡구식]으로 지상화한 구조이다. 평면 형태는 정방형에 가까우며 벽석은 1단~2단만 남아 있다. 규모는 길이가 2.3m 내외, 너비가 2.2m 내외이다. 내부 주검받침에서 사람 뼈가 많이 확인되었는데, 출토된 상태로 보아 추가장이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출토 유물]

국립중앙박물관과 부산대학교 박물관 조사를 통해 2,0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과 부산대학교 박물관에서 각각 소장하고 있다. 또 두류문화연구원 발굴 조사 때 출토된 344점은 현재 대성동고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유물은 토기류와 철기류가 대부분이며, 장신구가 소량 출토되었다. 토기류를 통해 덧널과 돌덧널의 시기를 알 수 있는 가야 토기의 다양한 기종을 확인할 수 있으며, 돌방무덤에서도 인화문 토기류가 출토되어 토기의 변화상을 알 수 있다. 철기류는 농공구류와 무기류가 함께 부장되어 있었으며, 150호분의 투구와 39호분·57호분의 재갈 등 마구가 출토되었다. 사람 뼈는 200여 구를 확인하였는데, 한 무덤 안에 1구가 원칙이나 돌방무덤에서만 5구~8구가 동시에 나오기도 하였다. 그중 편두(扁頭)가 10여 구 확인되어, 당시 일반인에 대한 편두 풍습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유구에서 아라가야계와 대가야계, 신라계와 같은 다른 지역의 유물이 많이 출토되어 이 시기에 교류가 활발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황]

김해 예안리 고분군은 1978년 6월 23일 사적 제261호로 지정되었으며, 소유자 및 관리자는 김해시이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는 삭제되었다. 발굴 완료된 구역은 잔디를 심고 철제 울타리를 설치하여 원형 보존하고 있으며, 유적에 대한 알림판을 세워 놓았다. 또한 사적지 정비 작업의 일환으로 현재 개인 주택이나 창고 시설 등의 지장물에 대한 철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김해 예안리 고분군에서 삼국 시대 가야의 덧널무덤과 돌덧널무덤, 돌방무덤, 독널무덤 등 다양한 무덤이 확인되어 삼국 시대 무덤의 변천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가야권의 중심은 아니지만 삼국 시대 가야 무덤이 4세기 전엽에서 7세기 후엽에 걸쳐 덧널무덤→돌덧널무덤→돌방무덤의 단계로 연속적으로 변화하면서 조영된 하나의 유적으로서 큰 의미가 있다. 더불어 다양한 묘제의 중복과 토기의 형식적 분석을 통해 가야 고분의 발달 과정 정립에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가 된다. 또한 상태가 양호한 고(古) 인골이 다량으로 출토되어 삼국 시대 가야인 또는 고대 한국인의 형질 자료 축척의 계기가 되어, 고고학적 자료로서뿐만 아니라 형질 인류학적인 연구 자료를 제공해 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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