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11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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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食生活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성진석 |
[정의]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형성된 음식 및 생활 풍습.
[개설]
좁은 의미의 식생활은 즐겨 먹는 음식의 종류와 조리법만을 말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이 뿐만 아니라 조리 기구, 식사 예절 등 음식을 먹기 위한 모든 행동이 포함된다. 김해 지역의 식생활은 이 지역 자연환경과 지역 주민들에 의해서 선택된 식재료의 종류, 그리고 조리 방법에 의해서 규정되며, 이는 지리적·기후적·경제적·사회적·역사적 요인 등 주변 환경의 영향 속에서 가장 합리적인 형태로 선택하는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김해 지역 식생활의 특징은 첫째 특색이 강한 전통 음식으로 주로 세시 풍속 음식이나 의례 음식에서 잘 드러난다. 둘째는 근현대에 만들어졌지만 지역에서만 먹어 왔던 특색 있는 음식으로 ‘김해 9미[먹을거리]’ 등이 여기에 속한다. 셋째는 각 지방 어디에서나 흔히 먹는 재료이나 지방색을 가미한 조리법으로 만들어진 음식으로 가죽나물·가죽자반·콩나물장조림·무말랭이장아찌·수삼닭튀김·박김치·콩잎물김치 등이 있다.
[식재료의 변화]
김해 여러 지역 패총에서 발견된 조개는 김해 지역의 선사 시대 사람들의 주요 음식이었다. 뿐만 아니라 멧돼지, 사슴, 물개, 거북 등과 같은 동물의 뼈와 탄화된 쌀, 벼와 보리, 밀, 콩, 조 등 곡식류와 굴, 털조개 등 해산물이 시루[甑] 모양 토기와 함께 발견되었다.
1. 어패류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진주목 김해도호부에 따르면 토공[해당 지방에서 조정에 바치는 공물] 중 식재료로 꿀·녹포(鹿脯)·모래무지[沙魚]·건합(乾蛤)·우무[牛毛]·미역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오래전부터 김해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봄부터 가을에는 전어가, 여름에는 웅어, 가을과 겨울에는 꼬시래기[문절망둑어]가 주로 잡혔다. 특히 김해시 불암동 인근 지역에서는 장어가, 대저·명지에서는 꼬시래기와 숭어가 주요 어획물이었다. 이와 함께 백합·굴·모시조개·소라·다슬기·고둥·대칭이·재첩이 많이 잡혔으며, 그 중에서도 재첩은 봄부터 가을까지 잡아 국을 끓여 먹고, 채소와 초장에 무쳐 먹었다. 하지만 1934년 녹산수문이 조성되면서 강과 바다를 오가는 어류가 줄어들게 된 서낙동강 지역은 ’민물고기의 곳간’이라 불리며 붕어·잉어·메기·가물치 등을 잡는 담수역 어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농지가 확보된 이후 수로와 논에서는 대형 정치 어구류와 미꾸라지 통발을 이용해 잉어, 붕어, 가물치와 고둥을 잡고 기르기도 하였다.
2. 곡물류
『세종실록지리지』 진주목 김해도호부에 대한 기록을 보면 토의(土宜)[해당 땅에서 적합하게 자라는 식물로 주로 곡식과 과실을 포함] 중 식재료로 이미 벼·조·콩·보리·메밀이 있었다. 특히 보리[메밀]를 평상시 곡식으로 활용하였고 메밀은 가루를 내서 떡을 찌든지 아니면 죽 혹은 국수를 만들어 주식으로 사용하였다.
20세기 초반, 경상남도는 조선의 개항과 함께 마산이 개항 도시가 되면서 일본인 거주 지역이 되었다. 동시에 일본인들이 남해안 도서에서 어로 행위를 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이 즐겨 먹었던 해산물 생산에 집중하였으며, 과일은 새로운 상품이 되어 과수 재배가 대단위 생산 체계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 강을 끼고 있던 김해 지역에서는 매년 멥쌀 수확량이 16만 석이 넘는 것으로 기록되었다.
3. 과일류
진영단감은 식민지 시기 일본인들이 재래종 단감을 개량하여 만든 품종이다. 1923~1924년 사이에 진영 역장을 지낸 일본인 요코자와[橫澤]라는 성을 가진 인물과 관련이 있다. 요코자와가 진영의 조선인과 혼인을 하면서 정착을 하게 되었고, 일본인 식물학자의 도움으로 김해시 진영읍 신용리가 가장 좋은 토양과 기후를 가진 것으로 보고 단감 100주를 심으면서 진영단감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현지의 조선인도 단감 재배에 참여하면서 1934년 진영과수출하조합이 설립될 정도였다. 광복 후 1968년에 진영단감협동조합으로 개칭하였다. 1989년 670호 농가에서 12만여 주의 단감나무를 재배하였으며, 2011년에 1,600여 농가에서 단감나무를 심어 수익을 올리고 있다.
대저배는 배수가 잘되는 사질토 지역인 대저면에서 일본인이 1908년에 처음 재배했는데, 구포에서 실어 일본, 만주로 보냈기 때문에 ‘구포배’로 불리기도 하였다. 대저배는 광복 이후에도 명성을 이어 오다가 1970년대 이후 채소 농사 활성화로 인해 점차 재배지가 감소되었다.
4. 채소류
박해수가 1958년 처음 시작한 비닐하우스 농법은 김해를 ‘비닐하우스 본고장’으로 만들게 되었다. 재질은 주로 PVC 필름을 사용했으며, 1970년대 초반에는 오이·토마토·샐러리·결구상추 등을 주로 재배하였는데, 특히 토마토의 재배 면적이 꾸준히 확장되었다. 이후 상추·양배추·호박·무·오이·고추·가지·샐러리·딸기·참외·멜론 등 다양한 작물이 재배되었다. 오이도 노지 재배에서 비닐하우스 재배로 바뀌게 되어 주요 재배 품종이 되지만, 수익성이 높은 토마토에 밀려나 점차 생산량이 줄어들게 되었다. 토마토는 비옥한 토양, 풍부한 일조량, 재배 기술의 발전으로 짠맛, 신맛, 새콤달콤한 맛을 내는 품종 확대로 고수익을 안겨 주었다. 특히 1970년대부터 재배가 시작된 대저토마토[일명 짭짤이토마토]는 김해군 대저면[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동]의 명물이 되었다.
[식생활의 변화]
근대기 김해 지역은 인근 대도시로부터 양식(洋食), 일식(日食) 등의 근대 식문화가 빨리 전해지게 되어 안코빵[팥앙금빵], 돈까스, 하이라이스, 오무라이스 등이 김해읍, 진영읍 등지의 식당, 제과점을 통해 소개되었다. 일제 말부터 6·25전쟁 시기까지는 미국의 구호 식량 중 밀가루, 가루우유, 옥수수빵 등이 전해지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맛과 식성을 바꾸어 놓았다. 1960년대에 들어서 인스턴트 라면이 구황 식품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햄버거를 비롯한 패스트푸드, 빵 등이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번져 나갔다. 이처럼 식성에 변화가 생기게 되면서 새로운 외식 문화가 형성되었다.
뿐만 아니라, 김해 지역의 향토 음식으로는 콩나물밥·무밥·솎은 배추겉절이·호박오가리나물·가죽나물·콩나물장조림·무말랭이장아찌·수삼닭튀김·가죽자반·민물장어구이·박김치·콩잎물김치 등이 있다. 2013년 김해시는 ‘김해 9미’를 선정하였다. ‘김해 9미‘에는 불암장어, 동상시장칼국수, 진영갈비, 김해뒷고기, 대동국수, 한림화포메기국, 내외동 먹자골목, 서상동 닭발골목, 대동오리탕, 진례닭백숙 등이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