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5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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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 元支里 古墳群 |
영어공식명칭 | Ancient Tombs in Wonji-ri |
이칭/별칭 | 원리지 고분군,김해 원지리 고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주촌면 원지리 산2-2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가야 |
집필자 | 김의중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20년 - 김해 원지리 고분군 야쓰이 세이이치 유적 확인 조사 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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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77년 - 김해 원지리 고분군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에서 지표 조사 실시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84년 - 김해 원지리 고분군 부산대학교 박물관에서 정밀 조사 실시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3년 - 김해 원지리 고분군 창원문화재연구소에서 정밀 지표 조사 실시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3년 - 김해 원지리 고분군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정밀 지표 조사 실시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5년 - 김해 원지리 고분군 대성동고분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실시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7년 - 김해 원지리 고분군 경상문화재연구원에서 긴급 발굴 조사 실시[3호분]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8년 5월 3일 - 김해 원지리 고분군 경상남도 기념물 제290호 지정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8년 - 김해 원지리 고분군 가야문물연구원에서 정밀 발굴 조사 실시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20년 - 김해 원지리 고분군 가야역사문화연구원에서 정밀 지표 조사 실시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20년 - 김해 원지리 고분군 삼강문화재연구원에서 정밀 발굴 조사 실시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김해 원지리 고분군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
소재지 | 김해 원지리 고분군 - 경상남도 김해시 주촌면 원지리 산2-2 |
출토 유물 소장처 | 국립김해박물관 - 경상남도 김해시 가야의길 190[구산동 232] |
성격 | 고분군 |
양식 | 앞트기식 돌방무덤|구덩묘|구덩식 덧널무덤 |
크기(높이,지름) | 5.9m[M2호분 동-서 직경]|6.9m[[M2호분 남-북 직경]|M2호분 봉토 높이 약 1.8m]|약 11.2m[M3호분 동-서 직경]|12.8m[M3호분 남-북 직경]|3.3m~4.5m[M3호분 높이]|4.8m[M4호분 길이]|3.3m[M4호분 너비]|0.8m[M4호분 깊이] |
소유자 | 이영옥 외|국토교통부 |
관리자 | 김해시청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기념물 |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주촌면 원지리에 있는 삼국 시대 가야 고분군.
[개설]
김해 원지리 고분군(金海 元支里 古墳群)은 6세기 금관가야 후기에 조성된 지배층의 묘역이자 김해시에서 가장 규모가 큰 봉분(封墳)을 갖춘 고총(高塚) 고분군이다. 최근 발굴 조사와 정밀 지표 조사를 통해 봉토의 하단부에 돌[護石]과 도랑을 돌린 앞트기식 돌방무덤임이 밝혀졌으며, 주 능선을 따라 13기의 봉토분이 열을 이루며 분포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위치]
김해 원지리 고분군은 김해시 주촌면 원지리 산2-2번지에 있다. 김해시 주촌면과 시가지 사이에 남-북 방향으로 형성된 경운산(慶雲山)[377m]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내리며 돌출된 구릉[큰 각단] 능선의 해발 34m~40m에 조성되어 있다. 주변으로는 6세기 삼국 시대 고상식 건물터와 구덩이 등의 생활 유구가 확인된 김해 원지리 유적(金海 元支里 遺蹟)과 청동기 시대 묘역을 갖춘 고인돌 떼 및 삼국 시대 가야 덧널무덤 등이 확인된 ‘김해 선지리 아파트 신축 유적’ 등 청동기 시대~조선 시대의 다양한 종류의 유적들이 인접하여 분포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최초 조사는 일제 강점기인 1920년 야쓰이 세이이치[谷井濟一][1880~1959]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유적을 확인하는 데에 머물렀다. 이후 1977년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현 국가유산청]에서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돌방무덤과 그 주변에 타 고분이 분포하고 있다고 추정하였다. 1984년 부산대학교 박물관에서 가야 문화권 유적 정밀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조사 결과 앞트기식 돌방무덤과 굴식 돌방무덤이 100여 기 이상 분포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1993년에는 창원문화재연구소[현 가야문화재연구소]와 동아대학교 박물관이 금관가야권 유적 정밀 지표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수많은 도굴 갱과 토기 조각이 채집되어 많은 고분이 존재할 가능성을 재차 확인하였다. 이후 2005년 대성동고분박물관에서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5세기 대~6세기 대 구덩식 덧널무덤과 고총 고분이 약 5만 6000㎡ 범위에 분포하는 것으로 확인하였다.
김해 원지리 고분군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 조사는 2017년 경상문화재연구원에 의해 실시되었는데, 도굴 등으로 인한 추가 훼손 우려가 있는 3호분에 대해 긴급 조사[입구부와 널방]를 실시한 결과 6세기 전반의 앞트기식 돌방무덤으로 확인되었다. 이후 2018년 가야문물연구원에서 3호분에 대한 긴급 조사 결과를 토대로 그 성격과 주변부에 대한 정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M3호분은 앞트기식 돌방무덤으로, M4호분은 유물을 따로 매납한 구덩이[副葬槨]로 추정되었으며, 주변부에서도 5기의 삼국 시대 구덩식 덧널무덤을 확인하였다. 2020년 가야역사문화연구원에서 김해 원지리 고분군 정밀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봉토분 13기와 추정 구덩식 덧널무덤 35기를 추가로 확인하였다. 또한 같은 해 삼강문화재연구원이 김해 원지리 고분군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실시한 M2호분의 발굴 조사를 통해서 앞트기식 돌방무덤임을 확인하였다.
[형태]
M2호분은 봉분의 하단부에 돌과 도랑[周溝]을 돌린 앞트기식 돌방무덤으로, 반지하식 구조로 축조되었다. 봉분의 형태는 원형으로 규모는 동-서 직경이 5.9m, 남-북 직경이 6.9m이며, 봉토의 높이는 약 1.8m이다. 널방[玄室]의 규모는 길이가 3.3m, 너비가 1.4m이다. 널방을 조성하였던 벽석은 3단 정도 잔존하며, 세워쌓기와 눕혀 쌓기를 섞어 가며 축조하였다. 널방의 바닥에서는 잔자갈과 점토를 깔아 시신을 안치한 돌[屍床石]을 확인하였다. 입구[횡구부]는 평면 형태가 타원형으로 석실의 남단 벽과 연결하여 조성하였으며, 무덤길[墓道]은 길이 약 1.4m, 너비 1.6m 정도로 ‘여덟 팔(八)’ 형태로 벌어졌다. 도랑에서는 큰항아리 조각과 원통형 그릇 받침 조각이 확인되어 의례 행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M3호분은 봉분의 하단부에 돌과 보강석을 돌린 앞트기식 돌방무덤으로, 지상식 구조로 축조되었다. 봉분 내에는 2기의 구덩식 덧널무덤과 뚜껑돌이 있는 구덩묘 1기가 조성되었다. 봉분의 형태는 타원형으로, 호석 바깥에 조성된 보강석 최하단을 기준으로 동-서 직경 약 11.2m, 남-북 직경 12.8m, 높이 3.3m~4.5m로 확인하였다. 널방의 평면 형태는 세장한 방형으로, 규모는 길이가 7.3m, 너비가 1.45m, 최대 높이가 1.57m이며, 천정 너비는 95㎝~100㎝이다. 벽석은 전체적으로 가로 및 세로 눕혀 쌓기를 섞어 가며 9단~11단으로 쌓아 올렸으며, 천장에서는 너비 0.7m~1.2m 크기의 뚜껑돌 7매를 확인하였다. 바닥에서는 자갈 등을 이용하여 시신을 안치한 돌 일부를 확인하였다. 입구는 봉분의 남동쪽 중앙부에서 ‘여덟 팔’ 형태로 벌어져 조성되었으며, 입구의 동쪽에는 시신의 매장과 유물 부장이 끝난 이후 막은 막음돌[閉鎖石]이 있다.
M4호분은 평면 형태가 장방형인 구덩묘로, 시신을 안치하기 위한 무덤보다는 유물을 따로 부장하였던 구덩이로 추정된다. 규모는 길이가 4.8m, 너비가 3.3m, 깊이가 0.8m이며, 황갈색 흙을 이용하여 야트막한 봉분을 조성하였다. 벽을 2단으로 단이 지게 굴착한 후 바닥을 편평하게 조성하였는데, 북쪽 바닥에는 뚜껑 있는 굽다리 접시와 자라병[扁甁] 등의 소형의 토기를, 중앙과 남쪽 바닥에는 긴 목 항아리와 짧은 목 항아리 등 크기가 큰 토기들을 매납하였다. 특히, 중앙의 토기 위에는 말 갖춤 용구인 발걸이[등자] 등을 매납한 특징이 있다.
[출토 유물]
발굴 조사한 M2호분~4호분에서 출토된 유물은 총 407점이다. 그중 토기류는 268여 점이고, 철기류는 120점, 옥석류는 19점이다. 유물 중 토기가 대다수를 차지하는데, 뚜껑 있는 굽다리 접시와 굽다리 접시, 굽다리 긴 목 항아리, 겹입술 굽다리 긴 목 항아리, 그리고 짧은 목 항아리와 자라병 등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철기는 허리띠 고리[교구, 버클]와 띠끝꾸미개[금구]를 비롯하여 말 갖춤 용구인 발걸이, 무구류 및 농공구류인 손칼과 화살촉, 낫 등이 출토되었다. 옥석류는 장신구 재료로 사용된 둥근 굽은옥 19점이 출토되었다. 특히, 출토된 토기 중에는 굽다리의 높이가 아주 낮아지는 소위 김해식 굽다리 접시[단각 고배]와 신라 양식 문양과 형태가 확인된 겹입술 긴 목 항아리[부가구연 장경호] 등이 있어 금관가야가 신라화로 진행되는 과정을 보여 주는 유물로 이해된다.
[현황]
김해 원지리 고분군은 발굴 조사가 실시된 고분을 중심으로 원상 복구하였으며, M2호분·3호분은 원상 복구한 후 봉토에 잔디를 심은 상태이다. 나머지 대다수의 고분은 나무가 무성하게 있는 상태이며, 일부는 현대 분묘와 경작지로 조성되어 있다. 김해 원지리 고분군은 2018년 5월 3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290호로 지정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는 삭제되었다. 소유자는 이영옥 외 국토교통부이고, 관리자는 김해시청이다. 최근 김해 원지리 고분군에 대한 정비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발굴 조사와 지표 조사를 실시하였고, 국가 사적 지정을 위한 학술 대회도 진행하였다. 출토 유물은 국립김해박물관에서 소장하여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김해 원지리 고분군은 6세기 전반 김해 지역에서 새롭게 등장한 앞트기식 돌방무덤을 주체로 한 고총 유적으로, 금관가야의 매장법이 신라적인 매장법으로 변화하는 과도기에 있는 고분군이다. 특히, 김해 원지리 고분군은 금관가야의 전성기에 축조된 김해 대성동 고분군(金海 大成洞 古墳群)과 김해 양동리 고분군(金海 良洞里 古墳群)의 고분 문화에 비해 실체가 명확하지 않았던 6세기 금관가야 후기의 고분 문화를 이해하고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