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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김해 지역 최초의 단위 정치체로 등장했던 부족 연합 집단. 구간사회는 『삼국유사』「가락국기」에서 추장(酋長)으로 기록된 아홉 촌장의 구간(九干)이 김해 지역을 9개 마을로 나누어 영도하였던 사회이다. 가락국 수로왕이 철기 문화에 기반한 존재임이 분명한 만큼, 이전 단계인 구간사회는 청동기 문화 단계로서 고인돌을 무덤으로 축조하던 사회로 추정되고 있다. 구간사회는 가락국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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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김해 지역에 있었던 삼한 시대 초기 국가.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 변진조에는 ‘구야국(狗邪國)’으로, 『삼국지』 위서 동이 왜인조에는 ‘구야한국(狗邪韓國)’으로 기록되었다. 『삼국지』가 편찬된 3세기 후반 경에 김해 지역의 가야국을 오가던 중국인이 전하는 이름을 편찬자 진수(陳壽)가 채록·기술한 것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가락국기」에 기록된 가야국의 이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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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번성했던 고대 가야왕국. 가락국은 『삼국유사』「가락국기」에 따르면, 김해 지역에서 서기 42년 시조 수로왕부터 532년 말왕 구형왕까지 10대의 왕이 경영했던 고대의 가야왕국이었다. ‘기락국’의 표기는 ‘가라의 나라’에서 비롯된 것으로, 1076년(문종 30)에 금관주지사가 김해 가야국의 역사를 편찬할 때 사용한 국명이었다. ‘가라’의 어원에 대해서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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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번성했던 고대 가야 왕국. 금관국은 기원을 전후한 시기부터 서기 532년까지 낙동강 동안의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번성했던 고대 가야 왕국이다. 가야 문화의 발상지로서 기원전후부터 4세기 경까지 전기 가야의 가야제국 중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정치체였다. 한반도 서북 지역의 한군현과 일본 열도의 왜국들을 연결하는 동아시아 교류의 중심지로서 번성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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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철기 시대 이후부터 562년까지 경상남도 김해시를 비롯한 남해안과 낙동강, 섬진강 유역 일대에 분포하였던 고대 정치체의 총칭. 가야는 가라(加羅), 가라(伽羅), 가라(迦羅), 가라(呵囉), 가라(枷羅), 하라(賀羅), 가라(駕羅) 등 다양한 한자로 표기되었는데, ‘가야’라는 표기가 『삼국사기』 등 고려 시대에 간행된 사서부터 등장한 점을 보면 당대에 사용된 용어는 아니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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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김해 지역의 금관가야를 비롯해 경상남도, 경상북도 일대에 분포한 6개의 가야 소국을 가리키는 역사 용어. ‘6가야’는 『삼국유사』「가락국기」의 육란설화와 『삼국유사』 오가야조를 근거로 만들어진 개념어이다. 「가락국기」 육란설화의 “세상에 처음 나타났다고 해서 이름을 ‘수로’라 하고 [중략] 곧 여섯 가야 중의 하나이다. 나머지 다섯 사람도 각각 가서 다섯 가야의 임금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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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김해 지역에 성립한 가락국의 또다른 이름. 금관가야는 현재 김해 가락국을 지칭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되지만,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알 수 없다. 금관가야는 『삼국유사』 오가야조에 의하면, “『본조사략』에는 태조 천복 5년 경자에 다섯 가야 이름을 고쳤는데, 첫째가 금관…”이라고 했을 뿐, ‘금관가야’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6세기 후반~7세기 전반 신라에서 가락국을 지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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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김해시 또는 경상북도 고령군의 가야국으로 추정되는 고대 왕국의 명칭. 임나가라(任那加羅)는 「광개토왕릉비」에 기록된 가야국의 별칭이다. 「광개토왕릉비」는 고구려가 399년 신라의 구원 요청에 따라, 400년에 5만의 보병과 기병을 파견하여, 가야와 왜에게 공략되고 있던 ‘신라성(新羅城)’을 탈환하고, 달아나는 가야와 왜병을 쫓아가 임나가라(任那加羅) 종발성(從拔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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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농업을 위해 만들었던 수리 관개 시설. 김해 지역은 하천과 바다가 접하는 지리적 특성 상 범람을 막고 농업 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제언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제언을 축조하고 활용하였는데, 김해 봉황동 제방유적을 통해 고대 금관가야 때부터 제언을 축조하였던 것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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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고구려와 신라의 연합군이 가락국의 경역에 있었던 임나가라의 종발성을 비롯한 낙동강 이동 지역에 진출한 사건. 고구려 남정은 광개토왕릉비문에 기록된 경자년, 즉 400년에 벌어진 고구려의 신라 구원전이며, 고구려 남정을 계기로 5세기 가락국의 쇠퇴와 가라국, 안라국 등 가야 제국의 급격한 변화를 야기한 사건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광개토왕릉비문 경자년조는 180자 중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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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기 전반 고자국, 골포국 등 포상팔국이 김해 가락국을 침공한 사건. 포상팔국전쟁 기사는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와 「열전」, 그리고 『삼국유사』의 「피은」편에 각각 실려 있지만, 전쟁대상국이 각각 다르게 기술되어 있다. 이 때문에 『삼국사기』 초기 기사의 신빙성 문제와 결부되어 포상팔국전쟁의 시기와 대상국을 둘러싼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포상팔국전쟁 기사에 대한 전거 자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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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김해 지역에 있었던 가락국의 역사서. 『개황록(開皇錄)』 혹은 『개황력(開皇曆)』은 532년 가락국의 멸망 이후부터 「가락국기」가 편찬되었던 1076년 사이의 어느 시점에 편찬되었던 가락국에 대한 역사서이다. 서명의 ‘개황’에 대해서는 중국 수나라의 연호[581~600년]로 보거나 ‘황조(皇朝)를 연다’라는 일반적 표현으로 보는 견해로 나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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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문종 때 편찬되어 『삼국유사』에 채록된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 있었던 가락국의 역사서. 『삼국유사』 「가락국기」는 승려 일연이 지금주사(知金州事)의 『가락국기』를 채록한 것으로 원래 내용 체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알 수 없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가락국기」는 수로왕의 탄생, 가락국 건국, 수로왕과 탈해의 다툼, 아유타국 출신 허황옥과의 혼인, 축성, 관제 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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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의 신라와 북쪽의 발해가 병존한 시기 경상남도 김해 지역의 역사. 남북국 시대는 신라와 발해가 한반도의 남과 북에 함께 존속하였던 시기를 말한다. 당나라 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676년 삼국을 통합한 신라는 이후 멸망하는 935년까지 대동강과 원산만 이남의 영토를 다스렸다. 698년 고구려 출신 대조영(大祚榮)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을 이끌고 발해를 세워, 926년 거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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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2년 웅천주 도독 김헌창이 반란을 일으켜 경상남도 김해 지역을 장악했던 사건. 김헌창의 난은 822년(헌덕왕 14) 3월 웅천주에서 일어난 대규모 반란이었다. 9주 5소경 가운데 김해 지역을 포함한 5개 주와 3개 소경을 장악하였고, 국호를 장안(長安), 연호를 경운(慶雲)으로 정할 정도로 기세가 막강하였으나 한 달이 못되어 결국 진압되었고 김헌창은 자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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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김해 지역에 설치되었던 신라 통일기의 특별 행정 구역. 신라 통일기의 지방 제도는 9주 5소경 체제이다. 금관가야는 532년(법흥왕 19) 신라에 통합된 후 신라의 금관군, 가야군으로 편제되었다가 680년(문무왕 20) 5월 금관소경(金官小京)으로 승격하였다. 경덕왕 16년 군현 개편 때에는 김해소경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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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후기 진례와 김해 지방의 호족이 칭한 관직. 신라 후기 각 지역의 농민 반란으로 중앙 정부의 지방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자 김해의 진례성을 장악한 호족에게 신라 정부가 내려준 관직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