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9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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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化·藝術 |
영어공식명칭 | Clture and Arts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양화영 |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에서 음악, 미술, 연극, 영화, 무용 등의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활동.
[개설]
문화예술은 문화와 예술을 융합하여 예술 활동이 있는 문화를 지칭하는 것으로 문학 예술, 영상 예술, 공연 예술, 전통 예술, 음악 예술 등 예술 및 문화 활동 모두를 포함한다. 김해 지역에서는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음악계, 미술계, 공연계에서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가야를 주제로 한 전시와 공연, 작품 등을 통해 지역 문화예술뿐 아니라 가야와 김해를 홍보하는 역할을 하며 김해시가 문화와 예술, 역사의 도시로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음악계]
일제 강점기 김해 지역 음악계 활동은 『동아일보』 등의 신문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21년 4월 25일 ‘김해 여자 강연회’에서 김필애의 독창과 마산창신학교 음악대 연주가 열렸다고 나온다. 이후 음악 활동은 1934년까지 해마다 1~2건 정도 신문 기사에서 확인된다. 일제 강점기 음악회는 각종 청년회, 동맹 단체에서 주최하고 여러 사회단체와 동아일보 김해지국 등에서 후원하였으며, 주로 합성학교[현 김해합성초등학교]와 김해극장에서 열렸다.
광복 후 김해 지역의 음악 활동은 학교 강당이나 종교 시설에서 열리는 독주회, 독창회 등의 공연만 확인된다. 이 시기 김해 출신의 작곡가 금수현이 경남음악협회를 만들었고 1946년 6월 경남학생음악콩쿨를 개최하였다. 바이얼리니스트 배도순과 피아니스트 목진태도 이 시기에 활동하였다.
1960~1970년대 김해의 음악 활동은 약간의 침체기였지만, 1946년 개최된 경남학생음악콩쿨이 1963년 부산음악교육연구회가 주최하는 전국학생음악경연대회로 명칭을 개칭하여 2022년까지 이어졌다.
1980년대부터 김해 지역에서는 수로노래회, 김해소년소녀합창단, 가야합창단, 호산나노래선교단, 수산나노래선교단 등 소규모 형태의 민간 음악 단체가 결성되어 활동하였고, 성악과 피아노를 중심으로 한 음악회와 아마추어 연주단 중심의 음악회가 개최되었다.
1990년대에는 김해시립예술단[1991], 김해청소년오케스트라[1992], 김해관악합주단[1993], 김해교향악단[1997] 등 다양한 합주단이 창단되어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또 민간 예술 단체인 한국음악협회 김해지부가 1990년에 결성되었다. 1994년 2월 19일에는 한국음악협회 김해지부 주최로 ‘신춘음악회’가 열렸으며, ‘가야문화축제 전국학생음악경연대회’, ‘아름다운 김해로 전국성악경연대회’, 국내 최초 피아노 국제 음악제인 ‘김해국제음악제’가 개최되었다.
김해 지역에서 음악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05년 김해문화의전당 개관 이후이다. 김해문화의전당은 마루홀, 누리홀, 애두름마당, 윤슬미술관, 영상미디어센터, 시민스포츠센터, 아람배움터 등의 시설과 편의 시설을 갖춘 종합 공연장으로 다양한 연주회를 개최할 수 있다. 그 외에도 김해문화원 공연장, 국립김해박물관 강당, 삼방동 칠암도서관[김해칠암문화센터] 내 공연장, 장유도서관 내 문화 센터 등 다목적홀이 갖추어졌다. 또 2003년에는 인제대학교에 음악학과가 개설되어 김해 지역 음악계를 선도해 나갈 수 있게 되었고, 김해시립청소년교향악단[2005]과 김해시립소년소녀합창단[2009]이 창단하였다.
이 외에도 김해의 예술 단체로는 김해신포니에타[2000], 김해플룻앙상블[2004], GH윈드앙상블[2011] 등 민간 관현악단과 가야오페라단[2008], 아미치델라무지카오페라단[2008], 경남마에스트리 오페라단[2009] 등의 오페라 단체와 김해교원합창단[2003], 김해여성합창단[2003], 리더스합창단[2003], 김해레이디싱어즈합창단[2007], 김해장유여성합창단[2009], 라온합창단[2012], 5060라온합창단[2013], 보현합창단[2014], 김해코러스합창단[2014], 나래합창단[2018] 등 많은 민간 합창단이 창단하여 활동하고 있다.
김해 지역의 경연 대회로는 2013년부터 ‘수로전국청소년예능콘테스트’와 2020년부터 ‘남명정신 문화예술제-전국 어린이 창작 동요제’가 개최되고 있다.
[국악계]
김해 지역에서의 국악 활동은 일제 강점기에 등장한 명창 대회에서 처음으로 확인된다. 명창 대회는 1920년대 중반에 등장해 1950년대까지 이어졌는데, 서울뿐 아니라 인천이나 예산 같은 지방에서도 개최될 정도로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 김해의 명창 대회는 일제 강점기인 1927년 3월에 김해청년회가 주관하여 열렸고, 1928년 12월에는 김해군 노동야학회 주최로 개최되었다. 1928년에 개최된 ‘조선명창가대회’에서는 이화중선(李花中仙)을 비롯한 21명이 참가하였다. 1929년 7월 27일 김해 지역에 처음으로 세워진 극장 낙성식에서 ‘조선명창가무대회’가 개최되었다는 기록이 있어 당시에 국악의 저변이 넓었음을 알 수 있다. 1920년대 국악계는 김해 출신 김녹주(金綠珠)를 비롯하여 이화중선, 이중선(李中仙), 배설향(裵雪香), 김추월(金秋月), 강소춘(姜小春) 등이 활동하였다.
광복 후부터 1980년대 이전까지 김해 지역 국악계는 별다른 활동이 없었다. 1980년대 이후 김해의 국악인 박병호, 류필현, 황정숙 등이 1983년 김해국악협회를 결성하였고, 1993년 한국국악협회 소속 지회로 인준을 받아 한국국악협회 김해지부로 개칭하고 활동하였다. 한국국악협회 김해지부는 기악, 성악, 무용, 풍물 분야로 구성되어 민속악 공연을 개최하고 정기 공연과 해외 공연을 추진하였으며, 신인을 발굴하기 위하여 각 부문 경연 대회를 개최하였다.
연주 공연 단체로는 1991년 창단하였다가 1998년 재편된 김해시립가야금연주단, 2016년 3월에 창단한 김해문화원 국립관현악단이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 그 외에도 김해제일고등학교 가온국악관현악단, 김해대곡초등학교 국악관현악단, 김해봉황초등학교 대취타대가 우수한 성과를 내고 있으며, 연음예술단, 우리소리예술단, 가야가락예술단, 우인덕예술단, 한누리예술단, 가야소리예술단, 일통고법보존회 경남지회, 무척풍류방 예술단, 김해 덧베기 등 국악과 사물놀이 관련 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미술계]
김해시의 미술계 활동은 전통 서화와 현대 화단으로 양분되어 있다. 전통 서화는 일제 강점기 영남 문인화맥의 한 축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현대 화단은 1980년대 이전까지는 별다른 활동이 확인되지 않다가 1980년대 이후 김해 화단이 형성되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김해의 전통 서화는 한국 전통 서화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자적인 흐름을 간직하고 있으며, 문인화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시기 김해 문인화맥의 1세대는 차산(此山) 배전(裵婰)이 중심이며, 그 제자인 아석(我石) 김종대(金鍾大), 우죽(又竹) 배병민(裵秉民), 수암(修菴) 안병목(安秉穆)이 활동하였다. 이후 운정(雲丁) 류필현(柳弼鉉)과 한산당(寒山堂) 화엄선사(華嚴禪師), 범지(凡志) 박정식(朴正植)으로 계승되며 발전하였다.
광복 이후 김해의 현대 화단은 무관심 속에서 낙후되었는데, 김해 출신 작가들의 활동으로 명맥을 유지하였다. 이 시기 김해 지역에서 최초로 열린 미술 전시는 1980년 12월의 ‘석화미전’이며, 두 번째 전시는 김해군 미술교육연구회의 창립전인 ‘교사미전 창립전’이다. 이후 1986년 박상규가 한국미술협회에 지부 설립을 신청하여 1988년 8월 11일 한국미술협회 김해지부가 만들어지면서 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김해 지역에는 조각의 박상규 이외에도 박영호, 윤소남의 서양화와 한국화의 김창환, 목공예의 류재열, 장유수가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2005년 김해문화의전당의 윤슬미술관과 2006년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의 개관으로 지역 미술계의 인프라가 갖추어지기 시작하였다. 이들 미술관의 개관은 미술계의 외적인 확장을 넓히는 계기가 되어 ‘PLAYING LIGHT’와 ‘한국현대미술의 흐름전’ 시리즈, ‘김해를 빛낸 예술가’ 시리즈와 ‘아티스트인 김해’를 통해 지역의 원로와 중진 작가를 소개하고 ‘뉴페이스인 김해’를 통해 신진 작가를 발굴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외에도 ‘야외설치 조각전’, ‘한중일 차사발전’, ‘이와자키 치히로전’, ‘도시의 기억과 상상전’, ‘동아시아의 교류전’ 등의 기획전이 진행되었다. 또 미술과 관련한 동호회 활동이 획기적으로 늘어 매년 20~30개의 대관이 이어졌다. 이 시기에 김해 출신 작가 주정이, 김용환, 김홍석 등이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무용계]
김해의 무용사는 설화인 「구지가(龜旨歌)」에서 시초를 찾을 수 있는데, 「구지가」는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원초적인 의지를 표현하는 예술로 천신과 자연신 숭배 사상이 잘 표현되어 있다.
전통 춤의 경우 근대 이전에는 궁중 무용과 민속 무용이 발달하였고, 기생이라는 여성 예인의 역할이 컸다. 남사당패라는 새로운 예인 집단이 등장하였으며, 1894년(고종 31) 신분제 폐지, 1909년(순종 3) 관기 제도 폐지로 인하여 여성 예인인 기생이 자연스럽게 지방으로 유입되어 전통문화를 이어 가는 예인으로 활동하였고 연회장을 활동 공간으로 삼았다. 조선 후기~일제 강점기에는 국악 교육을 받은 악공과 예인이 전문 예인에 포함되어 1920년대 이후 지방으로 떠돌아 다니는 전문 예인 집단으로 활동하게 된다. 김해 지역에서는 일제 강점기 김녹주, 김연연(金娟娟), 임앵무(林鸚鵡), 장란파(張蘭坡) 등 김해 출신 전문 예인들의 기생 관련 기록이 남아 있으나, 예인 활동이 학습·전승된 흔적이나 민속 무용은 확인되지 않는다.
전근대 시기에 춤추는 여성은 기생, 사당패, 무당으로 한정되었으나,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에는 그 범주가 확대되어 전문 집단과 유학생까지 다양한 집단에서 유행하여 예술 무용과 학교 무용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제 강점기 김해 출신 무용가로는 배구자(裵龜子)와 박외선(朴外仙)의 활동이 눈에 띈다. 또 1928년 김해군 형평사 6주년 창립 기념 단합 무용, 1930년 김해극장 무도대회와 1932년 최승희의 김해 공연 등이 신문 기사로 남아 있어 일제 강점기 김해 지역 무용계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광복 후 한동안 김해 지역에서는 뚜렷한 무용 활동이 확인되지 않는다. 이후 1954년 김해군 내 각급 학교 대항 음악·무용 대회와 1957년 김해군·창원군 내 초등학교 대항 음악·무용 대회가 개최되었다고 한다. 이후 1985년 김덕명을 중심으로 김해시립전통무용단이 창단되어 활동하고 있다.
김해시에서는 1990년대 이후 전공 학생 양성을 위한 사설 무용 학원이 개원하였으며, 1995년 김해문화원에서 일반인 대상으로 한국무용반을 개설하였다. 1999년에는 발레 강좌를 개설하였고, 공연을 주관하기도 하였다. 1990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김해지회가 설립된 이후 1991년에는 한국국악협회 김해지부, 1996년에는 한국무용협회 김해지부가 만들어졌는데, 이들 단체는 김해시에서 열리는 문화예술 행사를 주관하였다. 또 ‘난장공연’과 ‘수로전국청소년예능콘테스트’를 개최, 진행하기도 하였다.
2007년 김해시립전통무용단이 김해민속예술보존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한국무용협회 김해지부는 1992년 3회부터 2016년 27회까지 김해예술제에 참여하였다. 2016년 3월 7일 김해생활예술협회가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김해지회에 가입하여 매년 김해예술제에 참여하고 있다. 또 김해포즈무용단, 한가야예술단, 가야의 혼, 가야가락예술단, 가연무용단, 가야무용단, 우성자무용단, 연음예술단, 성주무용단 등의 개인 무용단이 창단하여 김해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도자계]
김해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도자 생산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지역으로, 일제 강점기인 1926년 10월 29일 『동아일보』 4면에 올라온 김해의 도자기 생산에 관한 기사와 1960년대 후반 옹기 제작소가 진례면 송정리에 형성되었다는 구술[조규진, 김해도자협회자문위원]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후 1974년 일본인 시미즈[淸水]가 장유 지역에 가락요를 설립하였고, 1975년에는 재일교포 김춘식이 진례면에 김해요를 설립하여 김해 찻사발과 분청사기, 다완, 물컵, 생활 도자기 등을 일본에 수출하였다. 그러다가 김춘식이 1982년 김해요를 폐쇄한 이후 토광요, 삼진요, 삼보도예 등이 설립되어 현대 김해 도자 활동이 시작되었고, 진례면을 중심으로 공방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도자가 활발하게 생산되고 있다.
1989년 김해 지역에서 활동하는 도예가들이 지역의 도자 문화예술 확장과 도자기 생산 확장을 위하여 경남전승도예협회를 설립하였다가 2003년에 김해도예협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후 김해도예협회는 김해분청도자박물관의 운영 기관으로 선정되었으며, 김해도자소공인특화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또 2021년 12월에는 김해분청도자판매관을 운영하는 기관으로 선정되었으며, 김해의 도자 발전과 회원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해마다 협회 회원전, 기획전을 실시하고 있고 중국 및 일본과 교류 및 학술 세미나를 수행하고 있으며, ‘분청도자대전’, ‘김해전국차그릇공모전’, ‘경남찻사발전국공모전 및 초대전’ 등 다양한 행사를 주관하며, 1996년부터는 김해분청도자기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그 외에도 김해시에는 김해 도자 문화예술과 산업 발전을 위한 도자 클러스터가 조성되어 있다.
[연극계]
김해는 지역적인 이점으로 인해 일제 강점기부터 부산 지역에 상륙한 외부 극단이 인근 지역으로 이동할 때 자연스럽게 방문하는 도시로, 연극 활동이 활발하게 이어졌다. 1921년 7월 말 「갈돕회」 공연이 열렸고, 1921년 11월 대전청년문예부 소속 연극단의 순회공연 「이우의 의리」와 「이상향」이 공연되었다. 또 1923년 여자교육협회 순회공연, 소인극 연극과 1920년대 이후에는 외부 극단의 방문 공연이 개최되었다.
1921년 청년회를 중심으로 「생호사호」, 「형매」, 「팔년고」 등을 공연하였으며, 이를 통해 회관 건립 비용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또 순회 연극단을 조직하여 김해 인근의 지역 공연을 추진하였고, 1923년과 1924년에 연극 공연을 제작하였는데 이러한 연극 제작과 공연은 주변 청년회나 여성 청년회 청년들의 예술 문화 활동에서 연극 분야 활동이 확대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1929년에는 김해극장이 설립되었으며, 1930년대 김해 연극 활동은 소인극 단체와 청년 모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945년 광복이 되고 6·25전쟁 이후까지 김해 지역에서는 행정 지원 부족, 전문 인력 부족, 연극의 비활성화 등으로 전문 극단은 창단되지 않았고, 1990년대까지 침체기가 이어졌다. 이후 1990년대에 김해시의 연극 활동은 「임금알」 공연을 시작으로 활기를 띠기 시작하여, 1992년 「우리 읍내」와 1994년 「방황하는 별들」이 공연되었다. 이 시기에 극단 가야가 창단하고 한국연극협회 김해지부가 설립되었다.
2000년 제18회 경상남도 연극제가 김해시에서 열리며 극단 노을의 「용띠 위에 개띠」가 연극제에 참가하여 장려상[단체]과 최우수 여자 연기상을 수상하였다. 이 시기 김해 지역에서는 2004년 창단한 극단이루마가 유일한 전문 극단이었으며, 매년 3~4편의 작품을 공연하였다. 2010년 이후 극단이루마 외에 극단 진영과 번작이가 창단하여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