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0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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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市 |
영어공식명칭 | Gimhae-s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세훈 |
[정의]
경상남도 동남부에 있는 시.
[개설]
김해시는 북쪽과 동쪽은 경상남도의 밀양시와 양산시, 부산광역시, 남쪽과 서쪽은 부산광역시, 경상남도 창원시와 접하며, 특히 부산광역시 및 창원시와의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김해 지역은 부산광역시의 위성 도시 중 하나이지만 단순한 침상 도시로 보기에는 힘든 면이 있다. 부산광역시에 비해 지가가 저렴하여 김해시로 많은 공장이 이전한 덕분에 다른 위성 도시와는 다르게 부산광역시 지역에서 김해시로 출근하는 사람이 더 많아 아침에는 김해 방향, 저녁에는 부산 방향으로의 정체가 극심하다. 다만 장유신도시 지역은 생활권이 창원시와 더 가깝기 때문에 창원시의 위성 도시로 보기도 한다. 출근 시간에는 창원 방향 창원터널 정체가 극심하며, 퇴근 시간대에는 장유신도시 방향 도로의 정체가 극심하다.
[위치와 행정 구역]
김해시는 한반도의 동남쪽 끝에 자리한 경상남도의 동남부에 있는 시로, 동서로는 동경 128° 21′ 47″~동경 129° 0′ 48″인 진영읍 좌곤리에서 대동면 월촌리까지이며, 남북으로는 북위 35° 23′ 31″인 생림면 도요리에서 북위 35° 9′인 장유3동까지이다. 북쪽은 경상남도의 밀양시[하남읍, 상남면, 삼랑진읍] 및 양산시 원동면과 접하고, 동쪽은 양산시[원동면, 물금읍, 동면] 및 부산광역시 강서구, 남쪽과 서쪽은 부산광역시 강서구 및 창원시[진해구, 의창구, 성산구]와 접한다.
2024년 1월 기준 김해시의 행정 구역은 1읍[진영읍], 6개 면[주촌면·진례면·한림면·생림면·상동면·대동면], 12개 행정동[동상동·회현동·부원동·내외동·북부동·칠산서부동·활천동·삼안동·불암동·장유1동·장유2동·장유3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 면적은 463.53㎢로서 우리나라 총 면적의 약 0.5%, 경상남도 총 면적의 약 4.4%를 차지하며, 경상남도 내 17개 시·군 중에서는 12번째로 크다.
[역사]
김해 지역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가야(伽倻)’이다. 삼한 시대에 수로왕(首露王)이 가락국(駕洛國)[또는 금관가야(金官加耶), 본가야(本伽倻)]을 세우고 김해 김씨(金海 金氏)의 시조가 되었고, 가야는 6가야의 맹주국이 되었다. 김해 지방은 가락국(駕洛國), 금관가야(金官伽耶), 금관국(金官國)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는데, 김해 지방의 고대 나라 이름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삼국유사(三國遺事)』 오가야조(五伽耶條)에 나오는 금관가야 때문이다. 그러나 『삼국유사』에 채록된 『가락국기(駕洛國記)』나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김유신전(金庾信傳)」 등에서 김해의 가야를 가라(加羅), 가라인(加羅人)으로도 표기하고 있어 김해 지방의 가야를 지칭할 때 가락국의 명칭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금관’이란 지명은 신라가 가락국을 통합하면서 생긴 이름이다.
3세기경 가락국[금관가야]은 철(鐵)의 생산과 해상(海上) 교역을 바탕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삼국지』에는 철이 생산되어, 한(韓)과 예(濊), 낙랑(樂浪), 대방군(帶方郡), 그리고 왜(倭)에까지 수출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철의 생산과 해상 무역으로 성장하던 가락국은 5세기경부터 포상팔국(浦上八國)의 침입, 고구려의 낙랑군 축출 등으로 쇠퇴하기 시작하여 6세기 초 신라에 병합되어 멸망하게 되었다.
그 후 통일 신라 시대에 김해 지역은 신라의 금관군(金官郡)으로 편입되었다. ‘금관’ 지명은 정복자인 신라가 가락국의 철을 관장하겠다는 의지로 붙였던 이름이다. 신라 문무왕(文武王)은 680년에 금관군을 금관소경(金官小京)으로 승격하였다. 문무왕이 김해 가야를 금관군에서 금관소경으로 변경한 데에는 문무왕과 가락국의 관계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무왕은 태종 무열왕(太宗 武烈王) 김춘추(金春秋)와 김유신(金庾信)의 누이동생 문명왕후(文明王后)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문명왕후와 김유신은 가락국 제10대 구해왕(仇亥王)의 증손으로 통일 신라의 외가가 김해 가야의 가락국이었던 것이다. 757년(경덕왕 16)에 금관소경은 김해소경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김해’의 지명은 이때부터 비로소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철(鐵)과 해상 왕국의 전통은 이때까지 이어지고 있었고, 쇠바다의 이름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김해 지역은 고려 시대에 김해부가 되었고, 조선 시대인 1413년(태종 13)에는 김해도호부가 되었다. 1895년(고종 32)에는 23부제가 시행되면서 진주부 김해군이 되었으며, 1896년 13도제가 시행되면서 경상남도 김해군으로 개편되었다. 1906년 경상남도 양산군의 대상면과 대하면이 김해군에 편입되고 김해군의 대산면이 경상남도 창원군에 이속되어 23개 면이 되었다. 1914년 4월 1일 행정 구역이 개편되면서 김해군은 14개 법정면[가락면, 좌부면, 우부면, 진례면, 장유면, 이북면, 하계면, 대저면, 녹산면, 주촌면, 상동면, 하동면, 생림면, 명지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1918년 7월 1일 좌부면과 우부면을 합쳐 김해면으로 하였다. 1931년 11월 1일 김해면이 김해읍으로 승격하였고, 1942년 10월 1일 진영면이 진영읍으로 승격하였다. 1944년 10월 1일에는 하동면이 대동면으로 개칭되었다. 1973년 대저면이 대저읍으로 승격하였으나 1978년 2월 15일 대저읍과 명지면, 가락면의 낙동지구가 부산직할시에 편입되었다. 1981년 7월 1일 김해읍이 김해시로 승격하여 김해군과 분리되었으며, 1989년에는 가락면과 녹산면이 부산직할시에 편입되었다. 1995년 5월 10일 김해군과 김해시가 통합하여 지금의 도농 통합 도시인 김해시가 되었다. 1998년 9월 12일 행정동인 칠산동과 서부동을 합쳐 칠산서부동으로 하면서 1읍 7개 면 9개 행정동 체제가 되었다. 2013년 7월 1일 당시 기준으로 전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면 단위였던 장유면이 행정동인 장유1동, 장유2동, 장유3동으로 나누어지면서 1읍[진영읍], 6개 면[주촌면·진례면·한림면·생림면·상동면·대동면], 12개 행정동[동상동·회현동·부원동·내외동·북부동·칠산서부동·활천동·삼안동·불암동·장유1동·장유2동·장유3동]이 되어 현재에 이른다.
[기후]
김해시는 우리나라 동남단인 위도 약 35° 선에 위치한 관계로 온대 지방에 속하며, 한서의 차가 적고 강수량도 다른 지방에 비하여 풍부한 편이다. 김해시의 2021년 기준 연평균 기온은 15.1℃, 1월의 평균 기온은 0.9℃이고 8월은 26.1℃로 대륙성 기후에 가깝다. 눈은 다른 지방과 비교하여 양뿐 아니라 일수로도 현저하게 적다. 최근 10년간 연평균 기온은 15.1℃로 전국 평균보다 2℃가량 높으며, 연평균 강수량은 1,332㎜로 전국 평균과 비슷하다. 온대 기후 지역으로 사계절의 구분이 뚜렷하고 남해 바다의 영향으로 인간 활동에 좋은 기후 조건을 가지고 있다.
[지형]
김해시 지역은 주로 경상계 지층이 주를 이룬다. 낮은 저산성 산지가 분포해 있으며, 중생대 대보 조산 운동 이후 반입된 화강암이 오랜 시간 동안 침식되며 만들어진 돌산이 많다. 시의 남서부 지역은 창원시와의 경계에 해당하는 높은 산줄기가 이어져 있는데, 비음산과 대암산, 용지봉, 불모산, 팔판산, 굴암산이 이에 해당한다. 시의 중앙부에는 황새봉, 경운산, 분성산, 임호산, 칠산 등이 있고 이 지역의 산들은 북동부나 남서부에 있는 산들에 비해 비교적 높이가 낮은 편이다. 김해시의 북동부에 해당하는 생림면, 상동면, 대동면 일대에도 높은 산줄기가 이어지는데 무척산을 비롯하여 석룡산과 금동산이 이어지고, 그 아래쪽으로 신어산과 장척산, 동신어산이 동서로 이어지고 이 산들에서 남쪽으로 돗대산, 까치산, 백두산의 능선이 뻗어 내린다.
북동부와 남서부는 산지가 많은 데 비해 북서부 지역은 화포천 유역이고, 남동부 지역은 조만강 유역으로 상대적으로 평지가 넓게 분포한다. 화포천은 진례분지를 관통하고 나와 진영면과 한림면의 물을 합하여 북으로 흘러 낙동강에 유입되는데, 특히 진례분지 일대와 낙동강에 유입되는 하류부 일대에서 넓은 평야가 형성되었다. 김해 시내를 지나는 해반천과 주촌면에서 흘러나오는 내삼천과 유하천, 장유동 지역에서 흘러오는 대청천과 율하천은 모두 조만강으로 유입되며, 일대가 평야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조만강과 서낙동강 일대는 과거 후빙기 해수면 상승 이후 현재보다 높았던 해수면으로 인해 바닷물에 잠겼다가 이후 서서히 육지화가 진행된 곳이기도 하다.
[인구]
김해시의 인구는 2023년 12월 31일 기준 53만 3659명으로, 경상남도에서는 창원시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이 중 남성 인구는 26만 9755명이고 여성 인구는 26만 3904명으로 남성 인구가 더 많은데, 이는 제조업이 발달한 도시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도시 개발에 따라 지속적으로 인구가 유입되어 1991년에는 20만 명, 1997년에 30만 명, 2003년에 40만 명을 넘어섰다. 2009년에 50만 명을 넘긴 이후 2019년 12월 31일 기준 56만 1468명으로 정점에 이르렀다가 2020년 이후 조금씩 감소하여 현재에 이른다.
[교통과 가로망]
부산광역시, 창원시와 접한 김해시는 1시간 거리에 대구광역시, 울산광역시 등의 대도시와 연결되며, 김해국제공항과 부산항, 부산 신항 등의 국제 교통망이 가깝다. 교통이 발달하여 남해고속도로, 남해제2고속도로지선, 남해제3고속도로지선, 중앙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지선, 부산외곽순환고속도로와 같이 여러 방향으로 고속도로가 이어진다. 국도 제14호선은 부산광역시에서 김해시 진영읍을 거쳐 창원시로 이어지는데, 대체로 남해고속도로와 나란히 달린다. 철도 또한 북부 지역[김해시의 한림면과 진영읍]을 횡단하고 있고, 장기적으로 부산권 광역 철도가 김해 지역을 지나갈 예정이다. 진영읍의 진영역에서는 KTX 고속열차가 정차하여 수도권 등지로 향하는 중요한 교통 수단 역할을 한다. 2011년부터는 부산광역시 사상구의 사상역에서 김해시 삼계동을 잇는 부산-김해경전철이 운행되어 김해 시내에서 부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많이 단축되었고, 특히 부산지하철 2호선, 부산지하철 3호선과 연결되어 연계 교통망이 더 활성화되었다.
김해시는 자연 발생적인 가로망 구조를 가진 구시가지와 규칙적인 가로망을 갖춘 신시가지 지역으로 구분된다. 김해시 내부를 살펴보면 구시가지에 해당하는 불암동, 부원동, 동상동 일대는 불규칙적인 가로망 패턴을 보이는 것과 반대로 내외동, 북부동과 같은 신시가지와 장유신도시 지역은 규칙적인 가로망 형태를 보이고 있다.
[산업]
1995년 5월 10일 김해군 지역이 김해시와 통합하면서 광범위한 농경지 면적이 시역에 포함되었다. 김해시의 총 경지 면적은 110.2㎢이며, 이 중 논이 86.2㎢, 밭이 24㎢로 각각의 점유 비는 논이 78.2%, 밭이 21.8%이다. 논이 밭에 비해 약 4.5배 이상 많으며, 낙동강 삼각주 평야 지대의 주요 곡창 지대를 이룬다. 논농사는 주로 대동면·장유면·주촌면·생림면 등지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며, 난대성 기후의 특성상 벼농사 외에도 채소 등을 재배하는 계절별 이모작 영농이 이루어진다. 특히 김해 지역은 우리나라 제2의 대도시권인 부산광역시의 배후지 근교 도시적 성격을 지녀서, 농가 인구의 20% 정도가 양배추·상추·배추·무·오이·가지 및 참외·딸기 등을 집약적으로 재배하는 근교 농업이 이루어진다. 또한 겨울철 온상 재배를 이용한 과수 및 채소 재배와 화훼 농업도 활발하게 이루어져 영남 제일의 근교 농업 지역이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또 부산광역시에서의 수요를 목표로 한 배후지적 성격의 젖소·돼지·닭 등의 전문 축산 영농도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김해 지역 발전을 견인하는 축은 3,000여 개 공업 기반의 중소 기업체라고 볼 수 있다. 잘 갖추어진 교통망을 통한 저렴한 물류비 등 우수한 입지 여건으로 매년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한반도 동남권의 기계 테크노 벨트의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