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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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일어난 김해부사 조준구의 학정에 저항한 농민 항쟁. 19세기 조선 사회는 지방관과 이서들의 학정과 함께 이른바 삼정(三政)[전정, 군정, 환곡]으로 불리던 조세 제도가 문란해지면서 농민 등 민중들에 대한 수탈이 심화되었다. 1876년 개항은 이러한 조선 사회를 더욱 큰 혼란에 빠뜨렸다. 쌀이 일본으로 빠져나가자, 쌀값은 뛰고 식량은 부족하여졌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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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일본군에 맞선 의병들의 저항 운동. 청일전쟁에 이어 러일전쟁과 을사늑약의 체결로 이어지는 일제의 국권 침탈이 가속화하자, 이에 반대하는 의병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경상남도에서는 지리산 등 서부 지역 산악 지대를 배경으로 유격전 형태의 의병 운동이 전개되었는데, 노응규(盧應奎)[1861~1907]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함양 출신 의병장 노응규는 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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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시행된 근대적 토지 조사 사업. 양전(量田)은 토지 제도와 지세 제도를 수립하기 위해 실시하는 토지 조사 사업으로, 광무양전은 1898~1904년에 걸쳐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다. 조선 시대 실시된 마지막 양전이며, 당시 고종의 연호를 따라 ‘광무양전(光武量田)’이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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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전개된 실력 양성 운동. 러일전쟁 이후 일본 제국주의자의 조선 침략이 본격화하자, 조선 내에서는 이에 대한 저항이 각계각층에서 일어났다. 애국계몽운동은 조선의 ‘힘’과 ‘실력’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일본에 ‘국권’을 박탈당하였다는 인식에 기반을 둔 것으로, ‘힘’을 길러 빼앗긴 국권을 다시 찾자는 운동이었다. 이때 그 ‘힘’은 ‘교육’과 ‘식산’의 진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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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전개된 국권 회복 운동.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통감부가 설치되자, 일제는 강제로 차관을 들이며 조선의 경제권을 장악하고자 하였다. 1906년 대일 국채가 1,300만 원까지 늘어나자, 국민의 힘으로 일본의 차관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고, 1907년에는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경상남도 지역에서는 25,000여 명이 참가하여 1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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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 설립된 근대 교육 기관. 개항 이후 외세의 침탈이 거세지고, 일본이 러일전쟁의 승리를 빌미로 조선을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정책을 진행하자, 이에 대한 저항의 차원에서 이른바 애국 계몽 운동이 전개되었다. 애국 계몽 운동은 실력 양성과 국권 회복을 목표로 하였으며, 실력 양성과 관련하여서는 근대적 교육 운동이 전개되었다. 근대 학교 설립은 근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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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95년까지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 있었던 행정 구역. 1894년부터 갑오개혁이 실시되는 가운데, 1895년 5월 지방 제도 개편이 이루어졌다. 이때 정부는 기존의 8도제를 폐지하고 전국을 23부로 구분하였으며, 23부 아래에 337군을 두었다. 그 결과 1413년 이래 유지되던 김해도호부는 진주관찰부 산하 김해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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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 있었던 애국 계몽 운동 단체 대한자강회의 지회. 대한자강회 김해지회는 국민 교육을 고양하고 식산을 증진하여 독립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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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 있었던 애국 계몽 운동 단체 대한협회의 지회. 대한협회 김해지회는 교육 진흥과 식산흥업을 중심으로 계몽 운동을 전개하여 일제의 침략에 항거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일제 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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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까지 경상남도 김해 지역의 정치적, 행정적 개관. 일제 강점기 이전 김해는 경상남도 1부 29군 체제에 속한 군으로, 좌부, 우부, 활천, 칠산, 하계, 상북, 중북, 하북, 생림, 상동, 하동, 명지, 가락, 덕도, 유하, 장유, 대상, 대하, 태야, 녹산, 율리, 진례, 주촌 등 23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910년 강제 병합 이후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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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에서 이루어진 토지 개간 사업. 낙동강 하구에 자리한 김해 지역은 일찍부터 삼각주가 형성되어 토지의 개간이 이루어졌다. 특히 비가 많이 오고 태풍이 부는 여름에는 낙동강이 자주 범람하여 낙동강 연안 경지의 침수와 농작물 피해가 컸다. 따라서 조선 시대부터 낙동강 연안에 크고 작은 제방을 구축하고 개간하여 둔전이나 궁방전 등을 설치하였다. 개항 이후 부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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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진행된 미곡 증산 계획. 일제는 자국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식민지 조선에서 토지 조사 사업을 진행하여 토지 매매와 저당이 가능하도록 하는 한편, 지주 중심의 토지 소유권 문제를 정리하였다. 조선 총독부는 토지 조사 사업의 완료를 전후한 1917년 조선수리조합령을 공포하여 산미 증식 계획의 사전 토대 작업을 진행하였고, 1920년부터 본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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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진행된 식민지적 토지 소유 관계를 확립하기 위한 사업. 일본은 자국의 근대화와 자본주의 발전을 위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었으며, 식민지 조선을 식량 및 원료 공급지, 상품 판매지로 재편하기 위해 다양한 경제 정책을 실시하였다. 그 가운데 하나가 토지 조사 사업이었다. 토지 조사 사업은 근대적 일물일권주의라는 토지 소유 제도를 확립한다는 미명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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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김해 지역 농민들이 일본인 대지주의 경제적 수탈에 저항한 사회 운동. 개항 이후 조선으로 건너와 부산과 마산 등 도시 지역에 정착한 일본인들은 농업 경영을 목적으로 경상남도 등 다른 지역의 토지에도 투자하였다. 구포·김해·밀양·양산·영산 등 낙동강 유역과 언양·금산 등 여러 지역에 분포되어 있었으며, 그중에 낙동강 하류 지대인 김해에 집중되었다. 소유지 면적은 약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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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전개된 청년들의 사회 운동. 1919년 3·1운동 이후 다양한 사상이 유입되는 가운데, 실력양성론에 입각한 문화 운동이 전개되면서 각 지역에 여러 청년 단체가 출현하였다. 김해 지역에서는 1911년 결성된 김해청년구락원을 개편한 김해청년회를 비롯하여, 읍내에서 김해노농청년회, 김해여자청년회, 읍 외 지역에서 김해장유청년회, 김해진례청년회, 김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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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전개된 백정의 신분 해방을 목적으로 한 사회 운동. 일제 강점기 백정(白丁)에 대한 사회적 신분 차별을 철폐할 목적으로 전개된 형평 운동은 1923년 4월 25일 진주에서 형평사(衡平社)가 창립되면서 본격화하였다. 형평사는 5월 13일 창립 축하식을 거행하였으며, 5월 14일에는 지방 대표자 회의를 열고 전국 각 도에 형평사 지사(支社), 각 군...
항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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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부터 4월까지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운동. 일본의 강압에 의해 체결된 조일수호조규에 따라 부산이 개항되자, 일본인들은 부산에 이주하여 거류지를 형성하였고, 나아가 정주를 위한 시가지를 조성하였다. 그리고 부산 인근 농촌 배후지인 김해는 일본인들의 대농장이 설치되며 경제적 침탈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김해 지역에서는 3·1운동이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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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4월 경상남도 김해 읍내에서 일어난 독립운동. 1910년대에 국내외에서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던 독립운동은 1919년에 들어서 3·1운동이라는 하나의 결집된 형태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1917년 러시아혁명에 이어 1918년 발표된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등이 영향을 미쳤는데, 국내에서는 1919년 1월 초부터 천도교, 기독교, 불교 그리고 학생 대표들이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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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3일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 봉림리에서 일어난 독립운동. 김해군 생림면[현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른 면 통폐합 때 안양리, 사촌리, 나전리, 봉림리, 금곡리, 생철리, 도요리, 마사리, 생림리 등 9개 리가 되었다. 여기에는 하북면 용덕리[현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용덕리]와 밀양군 하남면 삼랑리[현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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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12일 경상남도 김해 장유면 무계리장터에서 일어난 독립운동. 1919년 3월 30일 김해 읍내에서 만세 시위가 전개된 이후 인근 면 단위 지역에서도 만세 시위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장유면에서는 4월 3일 신문리장터에서 만세 시위가 계획되었으나, 사전에 발각되면서 실행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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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4월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진영리에서 일어난 독립운동. 김해 서쪽의 하계면[현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은 곡창 지대로, 개항 이후 이주한 일본인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농장이 조성되었다. 그리고 1905년에는 마산선 철도가 가설되면서 진영역이 설치되는 등 도로·철도망을 갖춘 교통의 요지로 발전하여 갔다. 일제 강점기 김해군 내에서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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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광주학생운동의 흐름 속에서 진행된 경상남도 김해 지역 학생들의 항일 운동. 일제는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고 조선인을 일본에 충성하는 식민지민[신민]으로 양성하기 위한 노예 교육을 실시하였다. 그런데 이 식민지 노예 교육은 기본적으로 한일 학생 간의 다양한 차별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민족 차별은 교육의 장은 물론이고 현실에서 다양한 사건 사고를 불러일으켰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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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전개된 항일 여성 운동. 1920년대 후반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로 나누어진 독립운동가 사이에서 함께 협력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자는 협동전선론이 대두되었고, 그 결과 1927년 2월 신간회(新幹會)가 설립되었다. 신간회 외곽 조직으로 결성된 근우회는 여자의 단결과 지위 향상이라는 강령하에 조직된 항일 여성 운동 단체로, 1931년 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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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전개된 민족 및 사회 운동. 신간회 김해지회는 일제 강점기 김해 지역에서 활동한 민족 및 사회 운동 조직이다. 1928년 3월부터 1930년 8월까지 합법적인 청년 운동, 노동 운동, 여성 운동, 학생 운동, 소년 운동, 형평 운동 등을 전개 또는 지원하다가 일제의 탄압 및 신간회 해소와 맞물려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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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 있었던 하자마농장에서 일어난 소작 쟁의. 개항 이후 조선에 진출한 일본인들은 양국 간의 무역에 종사하면서 일본인 중심의 상권을 구축하는 한편, 점차 내륙으로 영역을 확장하여 나갔다. 특히 김해와 밀양 등 낙동강 주변 지역은 철도 등 교통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넓은 평야 지대가 형성되어 있고, 부산이나 마산과 같은 일본인 집단 거주지의 배후지이다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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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전개된 혁명적 농민 조합 운동. 김해 지역은 낙동강 하류 삼각주를 중심으로 토지의 개간과 간척이 일찍부터 진행되었고, 비옥한 토지를 바탕으로 한 논농사 지대였다. 따라서 일제 강점기 김해 지역은 일본인 대지주와 농업 회사 등의 토지 침탈과 농장 경영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이와 같은 토지 침탈에 대해 3·1운동 이후 민족적·계급적으로 각성한 소작농...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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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 설립된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지부.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총력전 체제에 부합하는 법적 기틀인 국가총동원법을 1938년에 제정하고, 식민지 조선에도 곧바로 적용하여 전쟁 수행을 위한 노동력 동원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이에 1938년 7월 7일 조선 총독부에 의해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이 결성되었고, 김해 지역에도 지역 조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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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 있었던 야학회. 김해노동야학회는 김해 지역 일반 노동자 및 점원에게 생활상 필요한 지식을 교수하는 한편, 공사립 보통학교 졸업자로서 중등학교에 취학하기 어려운 사람의 학식을 증진할 목적으로 개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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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 있었던 농민 단체. 김해농민연맹은 소작인 단체의 조직 확대 및 각지 소작 쟁의의 조사와 조정을 목적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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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 있었던 수리 조합.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만들고 식량과 원료 공급지로 조성하고자 하였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경제 정책 중 하나가 토지 조사 사업이었고, 이를 토대로 두 차례에 걸쳐 산미 증식 계획이 추진되었다. 산미 증식 계획은 토지의 소유권을 획정하고 식민지 지주제 하에서 미곡을 대량 증산하여 일본에 이출하기 위한 계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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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 있었던 읍 단위 의결 기관. 1919년 3·1운동이라는 전민족적이고 전민중적인 저항에 직면한 조선 총독부가 이른바 ‘문화정치’라는 미명 아래 조선인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지방 제도를 개정하고 지방 자치 훈련 기관으로 김해면협의회를 설치하였다. 이후 1931년 10월 20일 총독부령으로 김해면이 읍으로 승격함에 따라 새롭게 읍의 일반 행정 사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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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진영 지역에 있었던 농민 단체. 3·1운동 이후 민족적, 계급적 각성을 이룬 농민들은 전국 각지에서 단체를 결성하여 지주 및 식민지 권력에 대응하기 시작하였다. 김해 진영 지역 농민들도 지역 내 농민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저항 운동을 지도하고자 농민 단체를 조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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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 있었던 학생 노동력 동원을 위한 단체. 학교연맹근로보국대는 학생들을 집단 노동에 동원하여 근육노동에 대한 존중감을 함양하는 한편, 체력을 연마하여 견실한 황국 신민을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중일전쟁 이후 노동력 강제 동원을 위해 조직된 근로보국대의 일종이다....